1 한 때 조미료 없이는 한 그릇의 국물도 만들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부들의 맛의 비결은 ‘미원’으로 통칭되던 조미료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갑자기 조미료 유해론이 제기됐다. MSG(글루탐산일나트륨)가 당뇨, 고혈압, 비만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주부들은 일제히 ‘미원 통’을 던졌고 식당에서도 “우리 식당에서는 MSG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라는 방문을 붙였다.하루아침에 달라진 맛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묵묵하게 싱겁고 밋밋한 맛에 혀를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건강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이라면 감내할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식당에서 기가 막힌 국물맛을 보면 그것이 MSG의 마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 중독된 관행을 되풀이 한다. 몇 끼를 줄곧 찾아가는 것이 증거다.전문가들은 MSG가 유해하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MSG의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글루타민산이 아니라 그것에 붙어 있는 소듐이다. MSG를 많이 먹으면 자연스럽게 소듐 섭취도 늘어난다.오늘날 우리의 매체가 정신적 MSG를 무자비하게 뿌리고 있다. 감칠맛 나는 이야기를 뿌려대면서 매체에 함몰하도록 유도한다. 연예인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해 만들어내는 리얼다큐멘터리, 스튜디오에서 떼거리로 몰려 앉아 풀어내는 수다에 국민들은 넋을 놓는다. 하루라도 매체가 없으면 심심해서 살아갈 수 없도록 중독시켜 놨다. 여기에 살짝 소듐을 뿌려댄다. 매체의 논조다.매체는 국민들의 입맛에 녹아나는 프로그램을 다량으로 살포하다가 뉴스시간에 엄청난 양의 소듐을 뿌린다. 국민들은 매체가 전하는 논조에 녹아들고 아무런 준비 없이 설득 당한다. 한 가지 사실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진실이 지켜지기도 하고 뒤틀리기도 하는 것이 보도의 특성이다. 매체가 지향하는 논조에 따라 한 가지 사실의 형상이 변용된다. 2 덕치(德治)는 동양의 근본 통치이념이었다. 덕치주의는 사욕에 의한 강권지배를 배격하며, 치자의 지위는 민심의 향배에 따르는 것이라는 민본주의적 혁명시인론(革命是認論)을 전제로 했다. 인간 세상에는 규범과 법이 질서를 유지한다. 규범과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규범과 법만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가 법을 강조하며 옭죄면 원성이 높아진다. 규범도 마찬가지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이럴 때 필요한 것이 덕이다. 덕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서경’에서는 “황제가 덕으로 금한 것을 백성들은 두려워하며 삼갔다. 그리고 덕으로 백성의 생활을 자유롭게 만드니 백성들의 모습이 환해졌다”라고 말했다. 권력을 가진 자의 통치는 법치 보다 덕치가 옳다는 것을 말한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지키기 쉽지 않다. 법과 칼이 횡행하는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우리 대통령에게 덕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도무지 사랑과 덕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국민들은 아우성이다. 원칙과 법의 잣대로 사회를 이끌어가려는 강경함에 불만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헌정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자 국민들은 어머니의 정치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판세로 봐서는 자모(慈母)의 정치가 아니라 엄부(嚴父)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눈치를 살펴서는 안 된다. 입장이 거꾸로 됐다. 3 많은 국민들은 매체의 MSG에 중독돼 덕치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법적 잣대로 모든 사회 현상을 재단한다. 법을 어긴 사람은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법은 ‘최소한’이다. 법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을 잊고 있다. 누가 그 법을 어기게 만들었는지 따지지 않는다.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치죄하기 바쁘다. 매체가 MSG를 버려야 한다. 그러면 세상이 맑아지고 투명해진다. 국민의 요구가 여과 없이 전달돼야 ‘불통’이 사라진다. 급박한 시대적 소명이다. 이상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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