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머무는 일 없이 흘러갑니다. 처음과 끝을 알 수 없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디가 끝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작을 자신의 출발점에 두고 결말 또한 자신의 삶이 다하는 곳에 둡니다. 시간의 영원성은 시간 고유의 본질인지는 몰라도 그러한 영원성이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직접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란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다함없다 한들 내게 주어지는 것은 처음과 끝이 분명한 구체적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의미의 시간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현되는 구체적인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한정되고 제약된 자신의 몫을 말입니다.우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나누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각각 다른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부질없는 짓인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눈 시간의 의미가 오히려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가두거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잡아함경》에 “지나간 일에 대해 근심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 현재 얻어야 할 것에 대해 바른 지혜로 최선을 다할 뿐, 따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시간을 나눌 때 모든 시간의 중요성은 현재에 있으며, 지금 일어나고 하는 일 모두가 현재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면서 마음은 과거의 근심에 묶여 다가올 미래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지금을 보내고 있다면, 다가올 미래 또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미래는 곧 과거의 근심이 되어 또다시 현재의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근심과 허황한 생각을 《잡아함경》에서는 “우박이 초목을 때리는 듯 어리석음의 불로 자신을 태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근심은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현재를 통해서 풀고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과거에 묻혀 현재를 낭비하거나 미래의 기대감으로 현재를 소홀히 한다면, 과거의 근심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며 미래의 꿈과 이상은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현재, 이 순간을 놓친다면 과거와 미래도 없으며 스스로 태우는 불길 속에 있음을 깨우치는 지혜로운 이들이 되길 바랍니다.불국사 주지  성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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