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두고 난리다. 한국 역사에서 역사에 대한 이렇게 뜨거운 토론이 벌어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런데 이 현상이 토론에서 그치지 않고 좌익과 우익의 이념갈등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 갈등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데에서 우려가 커진다.이 교과서의 논란이 되는 내용은 대부분 일제 이후 근현대사 부분이다. 진보진영은 이 교과서는 일본 치하에서의 한국의 변화를 ‘발전’이라며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한 반면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등은 적게 게재하고, 친일 인사들과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편파적인 시각으로 기술했다고 비난한다. 진보진영들이 비판하는 대목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진보나 보수나 반박하는 방법과 표현이 매우 살벌하다. 자신의 논리에 허점이 있는지, 상대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교학사 교과서가 제주 4.3사건에 대해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 경찰서와 공공기관이 습격받았다. 당시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많은 희생이 있었고, 많은 경찰과 우익 인사가 살해당하였다’고 한 부분에 대해 진보진영은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많았는데 이를 같은 무게로 기술했다고 비난한다. 지금 그 비난은 더 큰 비난을 불러오고 그 과정에서 극한적인 용어가 등장하며 이제는 도저히 토론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끓는 철판에 물 튀기듯 건드리면 폭발하고, 포용력이 없는 사회로 변한 것이다. 교과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정책과 입장, 업무추진 등에서 이런 현상이 고착화됐다.교학사 역사 교과서 사태는 우리 사회의 취약점의 하나를 드러낸 단면이다. 이제 갈등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참에 교학사 역사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출판사의 역사 교과서의 오류나 왜곡 또는 편향된 시각이 있는 부분(예를 들어 유관순 열사를 언급하지 않은 교과서 등)까지 모두 검토해 수정토록 해야 한다.그리고 분명한 것은 특정 학교가 교과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외부의 압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채택은 전적으로 학교의 권한이다. ‘외부 세력’은 교과서의 오류는 비판할 수 있어도 학교의 채택을 막을 권리는 없다. 채택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했다면 그것을 비판할 일이지 특정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요는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특정 학교가 특정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했다며 전국에서 어느 학교가 채택을 철회했는지 중계까지 하면서 ‘승리’로 자찬하고 있다. 가장 민주를 앞세우면서 가장 민주적이지 못한 절차를 자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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