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도, 정말 불행하게도 경주에서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일어나 꽃 같은 젊은 생명들이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그야말로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열심히 그 길고 긴 교육과정의 고비고비를 힘겹게 넘어왔던 그들이다. 그 힘겨운 대학 입시의 관문을 통과하고, 며칠 전 정든 고등학교의 둥지를 떠났던 예비 대학생들이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졸업식장에서 모든 선생님들과, 키워 준 부모님과 주변 친지들은 이들에게 그 힘들었던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마음껏 나래를 펼치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을 염원하고 축하를 했었는데, 오호 통제라! 아깝고 안타깝다. 자신의 의지대로, 본인의 적성에 따라, 개인의 색깔과 향기를 발산하며 저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나래를 펼칠 그들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우리의 곁을 떠났는데, 지금에 와서 희생된 그 젊은이들에게 그 어떤 추모의 몸짓도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유족들의 아픔을 어찌 말과 글로써 다 표현하며, 그 무슨 위로의 말이든 그들에게 진정 보탬이 될까?또 지금 당장, 그리고 평생을 두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아픔을 안고가야 할 부모님들께도 이 얄팍하고도 어설픈 몇 줄의 글이 무슨 도움이 되리오. 다만, 이 슬픔을 바라보는 모든 국민들과 애석한 마음을 함께하면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슬픔이 일어나지 말게 해야겠다는 모든 사람의 소망을 함께 담아 반성하고 다짐해야하겠다는 마음이다.이번  안타까운 사고와 젊은이들의 애석한 죽음을 접하는 순간, 1905년 황성신문에서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글이 생각났다. ‘오호 통제라 !’라는 말로 시작하여 ‘동포여 !’라는 말로 끝나는 이 글은 당시에 나라 잃은 설움도 설움이지만, 그보다 더 큰 슬픔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노라고 명분을 앞세워 나라를 왜놈들에게 넘겨준 대한 제국의 대신들에 대한 분노가 더 컸음을 느낄 수 있다.그렇다. 분명히 분노할 일은 나라를 빼앗긴 슬픔인데, 장지연은 당시 대신들을 나무랐다. 필자는 그 오적(五賊)도 나쁘지만, 그 이후에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많은 일반 백성들의 바르지 못한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들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구지하철 참사, 한강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이 그 예가되겠지만, 계속되는 사고들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는 새머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100년 전에는 나라 잃은 설움이 그렇게 컸지 싶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한 지금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인한 사고로 한 사람의 국민이 희생되어도 나라 잃은 슬픔처럼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미국의 경우, 미국 국민 중 한사람이 어려움에 처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국가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끝까지 구출하는 경우를 보고 있지 않는가?경주시에서 실내체육관에 젊은이들의 애석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분향소를 설치했다.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고 나오면서 앞으로는 부주의나 관심 소홀로 일어난 단 한사람의 인명 피해도 모두가 나라를 잃은 슬픔과 버금가는 슬픔으로 느낄 수 있는 나라를 소망해 본다. 그것이 선진국민의 건강한 시민의식이다.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선덕여자중학교 교장 최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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