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여러 고초를 겪다가 결국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해서 32년간의 짧은 생을 살다 돌아가신 분이다. 이 의거는 일제의 침략야욕을 만천하에 알리고 대한인의 기개와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일대 쾌거였다. 또한 국권을 빼앗기고 실의에 빠진 우리 민족에게 광복의 희망을 알리는 힘찬 예언이기도 했다. 당시 중국의 국가 주석이었던 원세개가 ‘평생 경영하신 일 이제 끝났소./ 죽어야 할 땅에서 삶을 구하면 대장부라 할 수 없는 일이죠./ 비록 한국 땅에서 태어났으나 이름을 온 누리에 떨쳤나이다./ 백세 사는 이 없는 세상에 그대는 천년 두고 사시리이다’라는 시를 써서 찬양한 일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일찍이 선각자로서 독립의 길은 학문과 실업의 진흥에 있음을 절감하고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워 겨레의 동량을 키워 내는 등 민족교육을 통해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다. 또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국내진공작전을 주도하며 치열한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09년 동지들과 함께 단지동맹을 결성하여 일사보국을 맹세하고 거사를 준비하였으며 마침내 하얼빈 역에서 조국침략의 원흉이자 세계평화의 공적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고 인류평화의 등불이 되셨다. 우리는 이와 같이 선열들의 피어린 항일투쟁으로 광복을 쟁취하였다. 광복 후에도 많은 시련이 있었으나 온 국민이 합심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이러한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통일 한국을 이루고 선진일류국가로 도약하며, 성숙한 세계국가로 우뚝 서야 하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국민통합이 절실한 때에 안중근 의사께서 “국민 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하여 업을 이루도록” 순국 직전에 당부하신 말씀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 지금의 과제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대구지방보훈청 보상과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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