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우리의 초중 8학년 과정의 김나지움이 있다.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된 독일의 여자애가 늦은 하교를 했다. 조금 걱정하던 엄마가 연유를 물었다. 아이는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교장선생님과 세 시간 동안 싸웠는데, 아직 얘기가 남아있어 우리는 내일 다시 싸울 것이다" 곁에서 보던 나는 너무 놀랐다. 그냥 선생님도 아니고, 교장선생님과 다투다니? 우리사회가 더욱 경직되었던 25년 전의 일이다.  나는 즉각 우리나라 상황과 대비했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교권도전이었다. 무엇보다 예의상 그런 일은 있어서 안 된다. 일찍이 선진국의 반열에 든 나라지만 이따위 버르장머리들을 키우다니, 앞으로 일어날 일에 지레 놀란 내 심장이 몹시 벌렁거렸다.  아이의 엄마는 조용히 다툼의 내용을 다 듣고 딸의 결정에 응원을 보냈다. "그래,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네 견해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조금 더 침착하길 바란다" 우리라면 엄마까지 학교로 불려가 무릎을 꿇어야할 지경인데 모녀는 평온했다.  혼란스러웠다. 교장선생님과 어린 학생의 세 시간 갑론을박, 도무지 상상이 안 되었다. 나이가 지긋했을 어른과 아이가 세 시간 동안의 견해차에 대한 공방전이라니, 우리라면 맞아죽어도 싸다. 철딱서니 어린 것의 얘기를 그다지도 오래 들어주고 납득시키려는 어른의 인내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학교에서 가장 높은 교장의 권위와, 그 상황을 보고도 퇴근한 선생의 무례함은?   그 당돌한(우리식으로) 여자아이가 제 오빠와 언성을 높이며 다툴 때도 부모들의 태도는 놀라웠다. 둘 다 친부친모인 그들은 아이들의 일에 어떤 관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좀 조용히 해달라는 부탁 정도였다. 무슨 일인지 오히려 궁금한 내가 물었다.  저희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문제에 어른이 관여하는 건 아니라는 김빠진 통역을 했다. 명랑해진 아이들이 산뜻한 결말을 내기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부모들은 책을 읽거나 자신들의 대화를 나누느라 분주했다. 합리성을 지닌 설득의 토론문화가 어떻게 형성되는 지 똑똑히 보았다. 한국의 부모들은 대뜸 서열(형, 아우)부터 따지고 판결도 친절히 내린다. 유독 이런 일이 아니어도 독일 사회 전반의 인본주의(人本主義)를 깊이 흠모하던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우리는 아이를 나라의 새싹이라 부르면서 땅을 뚫고 싹이 돋듯 고개를 들면 '어디 어른을 빤히 쳐다보느냐'고 한다. 적어도 백 개 이상의 낱말을 구사하는 나이쯤이면 제 뜻을 표현하려한다. 그러면 '어디 어른 앞에 말대꾸냐'고 한다. 어른이 시키는 말만 듣고, 시키는 공부만 주입(주유소 기름 넣듯) 받아야 착한 아이다. 이렇듯 답습이 전통이 된 우리들은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발상에 턱없이 무디다. 능동적 대처보다 수동적 자세의 삶을 당연시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제약을 예의라는 포장에 씌워 어른들의 전유물처럼 여긴다. 그래서 애초부터 평등과 대등도 허용이 안 된다. 나이, 사회적 지위, 남녀의 구별, 권력과 금력 등에 모든 차별이 존재한다. 오로지 서열로만 존재하는 언행의 오래된 관습이다. 중국의 문화혁명 이후 사라진 공자의 가르침, 우리가 흔히 예의라고 알고 있는 것들 중 버릴 것이 더 많다.  인간 본연의 정신세계를 존중하는 서구는 예의라는 틀에 정신의 성숙과 체득을 가두지 않는다. 진정한 표현의 욕구와 제멋대로인 자유분방함은 다르다. 자유를 권한으로 억압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만만한 아이 생각도 존중 받는 사회에서 그 아이들은 훌륭히 자라 멋지게 산다. 아마 제 부모들처럼 아이의 싹을 억누르거나 밟거나 베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대물림할 것이다.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줄 아는 어른의 귀를 가졌을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모르는 서구의 아이들이라고 천방지축 자라지 않는다. 그들이 선진국을 만든다. 이 화 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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