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유 씨의 죽음으로 세월호 참사 수사가 벽에 부닥치거나 사건의 진실이 영원히 묻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의 전말(顚末)을 떠나 지금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으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앞날에 대한 불신이 막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22일, 지난 6월12일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2.5km가량 떨어진 매실밭에서 발견된 부패된 남성의 시신이 유 씨의 DNA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신출귀몰한 재주로 `밀항설`까지 나돌던 유 씨가 이미 오래전에 사망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영장을 재발부받아 검거 장기전에 돌입한 수사팀이나, "못 잡나, 안 잡나"라며 공권력을 비꼬던 국민 모두가 뜻밖의 결과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유 씨 변사체가 40일 만에 그 신원이 밝혀졌다는 것은 첨단 과학 수사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먼저 변사체 발견 이튿날인 6월13일, 경찰은 바로 감식을 의뢰했는데 통상 하루 만에 끝나는 DNA 검사가 40일이나 걸렸다는 `수수께끼`에 직면하게 된다. 경찰은 사체가 심하게 부패한 상태에서 혈액이 아닌 뼈로 검사를 했기 때문에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 씨의 모발이 건재했으므로 이것 또한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국민을 더 경악시킨 것은 DNA 검사 지연이 아니다. 발견 당시 변사자는 고가 명품 옷을 입고 있었고, 구원파 계열사가 제조한 스쿠알렌 빈병이 발견됐으며, 유 씨 자서전인 책자 제목이 적힌 가방이 발견됐는데도 신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유 씨의 가장 큰 신체특징인 왼손가락 절단이 확인됐는데도 이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가장 기본이 `초동수사`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초동수사가 이 정도 수준이니 수사의 기본도 돼있지 않다는 얘기가 아닌가. 경찰은 초동수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발견 당시 노숙자로 보고 유 씨와는 관계없다고 판단, 머리카락 검사도 안했다"고 해명했다.  아무리 노숙자이기로서니 경찰 초동수사가 이러니 국민의 불신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기본 중에 기본인 초동수사조차 경찰 하부조직에 제대로 습득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다. 미제사건의 대부분이 초동수사 미흡이 아닌가.  세월호 침몰도 초동 대처의 미숙함이 참사를 키웠다. 이번 사건도 초동 수사의 미흡이 온 국민을 미궁(迷宮)으로 끌고 간 것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엉터리 초동 대처와 무엇이 다른가. 게다가 죽은 유 씨에 이끌려 40일 동안 국가 공권력이 허탕질을 했으니 `죽은 공명과 산 사마달`의 고사(故事)에 다름 아니다. 이러니 "경찰 수사를 못 믿겠다"는 반응에 이해가 간다. 오죽했으며 "시신 바꿔치기"라는 말까지 등장하겠는가. 유 씨 사건을 통해 기본과 기초가 안 된 우리사회의 적폐(積幣)를 다시 한 번 보는 것 같다. 언제까지 그 `시리즈`는 계속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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