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내몽고 적봉시 파림좌기(巴林左旗) 호얼토향(浩尔土鄕) 부하구문촌(富河溝門村)에서는 최초의 부하문화(富河文化: B.C. 5200~5000) 유적인 부하구문유지가 발견되었다. 현재는 이곳 이외에도 금구산(金龜山)유지, 남양가영자(南楊家營子)유지 등 3곳이 발견되어 있다. 1962년 5~7월에 이루어진 600㎡에 대한 최초의 발굴에서는 36개의 방 유적이 발굴되었지만, 남쪽 산자락을 끼고 150개 이상의 방 유적이 발견되었다. 1962년 5-7월에 이루어진 첫 발굴에서 중국 최초의 불에 구워서 '점을 친 뼈'인 복골(卜骨: H3:24)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뼈의 갈라지거나 터진 방향이나 수를 보고 점을 치는 행위를 '골복(骨卜)이라고 한다. 여기서 발견된 것은 사슴(혹은 양)의 견갑골(肩胛骨) 이다. 불에 구웠으나 뚫리지 않을 정도로 구멍을 내는 '찬(鑽)'의 흔적이 없는 초기의 복골이다. 후대에는 점치는 법이 발달하여 갑골점 등에서는 뼈에 뚫리지 않을 정도로 동그랗게 구멍을 내서 그 안에 불씨를 넣어서 뼈가 갈라지는 줄의 수나 방향 등을 보고 점을 치게 된다. 이형구에 의하면, (1) 이렇게 뚫리지 않을 정도로 구멍을 낸 것을 찬(鑽), (2) '찬'이 2개 이어져 대추모양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조(鑿: 뚫을 '착'이지만 갑골점에서는 '조'라고 함), (3) '조' 옆에 잘 터지게 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찬'을 만들면 '조'와 '찬'이 합쳐진 것을 '찬조(鑽鑿)'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에서 점을 치는 것을 나타내는 '점(占)'자나 '복(卜)'자는 모두 골복을 할 때 뼈가 터져나간 모양을 그대로 상형한 글자다. '점'자는 찬조(鑽鑿)를 한 구멍 옆으로 갈라진 모양이고, '복(卜)'자는 구멍이 생략된 채 뼈가 갈라진 모양을 상형한 글자인 것이다. 이러한 골복문화는 동이족의 문화이고, 그 최초의 기원이 요하문명의 부하문화에서 발굴된 것이다. 복골은 1000여년 후에는 중원지역에서도 보인다. 중원지역에서 현재까지 가장 이른 시기의 복골은 B.C. 4000년경에, (1) 황하문명 지역의 앙소문화(仰韶文化) 3기의 하남성 절천(浙川) 화왕강(下王岡)유지, (2) 감숙성 무산(武山)의 마가요문화(馬家窯文化) 석명하유형(石嶺下類型) 등에서 발견된다. 동물의 뼈를 이용해서 점을 치는 이러한 골복문화 복골문화는 동이족의 문화권에서 보이는 것으로, (1) 요하문명 지역에서 출발해서, (2) 중국의 동해안 지역과 중원 지역, (3) 한반도 일대, (4) 일본 지역으로 확대된다. '골복'은 요서 지역에서 남하한 상족(商族)들에 의해서 우리가 잘하는 문자가 있는 '갑골점(甲骨占)'으로 발전하게 된다. 상대의 갑골점은 자라의 배껍질이나 동물의 견갑골, 정강이뼈 등을 이용해서 점을 치는 것으로 상대 당시에도, (1) 찬조(鑽鑿)가 있는 것과 없는 것, (2) 문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다양한 복골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갑골문(甲骨文)'은 점을 친 결과를 자라나 거북의 배껍질에 새긴 '갑물(甲文)'과 동물의 뼈에 새긴 '골문(骨文)'을 합쳐서 말하는 갑골복사甲骨卜辭)를 말하는 것이다. 이 갑골문 혹은 갑골복사가 현재 한자의 기원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동이계열의 상(商)을 이어 등장한 화화족계열의 주(周)가 서면서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부여는 물론 변한과 가야에서도 이어지며, 일본 지역에서도 이어진다. 베링해를 통해 건너간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에도 남아 있으며, 오늘날에도 캄차카반도 일대의 코리야크족과 축치족의 문화에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