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둔황석굴, 선무도(禪武道), 국내 유일 석굴사원, 원효성사의 마지막 열반지, 동경주 대표 힐링 스팟...... 경주 함월산 골굴사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수많은 이들의 기도 도량인 골굴사를 오르는 길은 번잡한 여름의 일상을 잊게 했다. 수런수런 피고있는 원추리꽃들과 함께 7월 한여름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직관하는 골굴사 숲의 향기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청정 골굴사 가람에는 코로나 이후 각처에서 온 신자들과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골굴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선무도와 함께 다양한 문화유산과 스토리를 간직한 고찰 골굴사에서는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움직이는 선의 숨결’을 호흡할 수 있었다. 경주 골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으로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에 있다. 경주 함월산 유적지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골굴사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으로 선무도의 총본산지기도 하다. 
 
골굴사는 신라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이었고 경주 함월산의 성지로 매우 유서 깊은 도량이다.
  기림사의 ‘사적기’에 따르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했다.
 
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따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 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처의 석굴을 파서 목조와가로 전실을 건조해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12처 석굴 중 법당굴은 원효대사가 열반한 열반굴로 알려지고 있어 석굴사원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매년 여러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골굴사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보물 581호로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하고 있다. 
 
또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년 전부터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을 간직한 설화도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에 수록된 골굴 석굴도를 보면 여러 개의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석굴의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또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성리학자 정시한 선생의 기행문에도 당시 골굴암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여러 채의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쓰고 있다.
 
불교학자들에 의하면, 골굴사는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돼 오다가 조선 말기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개인 암자로 전해왔다. 이후 1990년 설적운(寂雲) 주지스님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됐다.
골굴사 주지스님이자 선무도 대금강문 이사장인 설적운 스님은 경주 출생으로 스무살에 출가, 범어사 청련암에서 선무도의 대가 양익 큰스님에게 선무도의 바탕이 되는 ‘불교금강연관’이라는 수행법을 배워 1985년부터 세속에 불교금강연관으로 포교하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37년째다. 
 
1986년 32세, 젊은 나이에 기림사 주지로 부임해 임기 4년을 마치고 1990년부터 지금까지 오늘의 골굴사를 이룩했다.
 
적운 스님은 템플스테이나 선무도로 대변되는 문화콘텐츠사업으로 30년간 직접 하나씩 골굴사를 건설했다. 절을 찾는 수많은 이들에게 골굴사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해 지금의 골굴사를 일궈낸 것이다.
  한편, 골굴사는 우리나라 템플스테이의 원조였다. 1992년 선무도와 결합한 템플스테이를 개발해 사찰의 문호를 개방했다. 
 
골굴사의 위상이 알려지면서 각 사찰들은 벤치마킹을 해갔고 현재 전국 약 140개 사찰의 템플스테이의 원형이었다. 아직도 국내외 템플스테이 중 골굴사가 가장 인기라고 한다.
 
수년전까지는 연인원 3만명 이상의 템플스테이 실적을 자랑했던 사찰이다.
 
골굴사를 찾으면 골굴사만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으로, 승군들의 전승 무예인 선무도를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 
 
골굴사는 1985년 (재)선무도 대금강문을 설립, 이미 2001년 선무도대학을 설립해 2011년부터 선무도 화랑 사관학교를 운영하는 선무도 총본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골굴사에 얽혀 있는 전설과 스토리들과 함께 선무도가 지닌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는 여타의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골굴사만의 자랑이다.
  선무도는 한국 불교의 전통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위한 실천적 방편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요가나 명상을 아우르는 관법수행법이다. 
  골굴사 내, 선무도의 수행과 포교를 위해 전문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인 선무도 대학이 있으며 선무도 대금강문 총본원에 있다.
 
2011년, 일반적 사찰 템플스테이에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접목해 단순히 해설하는 식의 사찰 안내에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선무도 공연을 시작해 대중에 선보였다.
  적운 스님은 “승군들의 수행방법과 무술기법들이 집대성된 것이 바로 선무도다. 몸과 마음은 하나 ‘선무불이(禪武不二)’의 무예다. 선무도 화랑 사관학교의 건학이념도 바로 원효 사상”이라고 설명했다.
 
골굴사 선무도는 짧은 기간에 대중화돼 한국의 전통 무예로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해왔다.선무도 공연은 사찰 문화콘텐츠로 그간 상당한 성과를 거뒀고 파급 효과 또한 컸다. 골굴사의 위상과 함께 경주의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부상했다.
  그런데 12년간 지속돼왔던 선무도 공연에 제동이 걸린다고 한다. 20여년 단련된 선무도 수련자들로 구성된 공연단이 해체될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경주시와 경상북도에서 지원되는 예산 4000만원과 골굴사 자부담 1800만원으로는 선무도 공연단의 인건비 지급조차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설적운 스님은 “선무도를 직업으로 가지던 제자들이 떠나면서 인력 확충이 어렵다. 그러나 올해까지는 이끌어갈 생각이다. 경주시나 경북도의 예산이 확충되지 않으면 도저히 운영이 어렵다”면서 코로나를 겪으며 운영난은 더욱 심해져 한계에 부딪혔다고 토로했다.
  선무도는 골굴사 홍보는 물론 불교 포교 역할과 경주관광산업이익의 증대 효과도 동시에 창출했다. 선무도라는 단일 콘텐트로 매우 선전했던 선무도의 위기는 지역으로선 큰 손실일 수 밖에 없다. 
 
충북 충주시의 택견무형문화재에 연간 16억씩 예산 집행하는 것에는 크게 비견되는 대목이다.
골굴사로 가기 위해서는 월성원자력홍보관에서 경주시내 방향으로 약 17㎞ 달려야 한다. 자동차로 약 25분 걸린다. 이 길은 새로 뚫린 자동차 전용도로로 갈 수도 있지만 옛길을 찾아 간다면 동경주에서 경주 시내로 향하는 고풍스러운 길을 끼고 가기 때문에 운치가 있다.
 
※ 이 콘텐츠는 (주)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