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의 감정은 글에 묻어난다고 한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감정’을 추측해볼 수 있다. 기분이 좋을 때 쓴 글에서는 장미꽃 향기가 나는 것 같지만 속상하거나 화가 난 상황에서 작성한 글을 보면 가시가 돋아나 있는 듯하다. 딥러닝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학습한 인공지능이라면 사람이 적은 ‘글’을 통해 그 사람의 태도나 감정을 보다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POSTECH 환경공학부 감종훈 교수, 박사과정 안치 리우(Anqi Liu) 씨 연구팀은 수질오염 불만 신고서의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이상기후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이 연구는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에서 발행하는 환경 분야 학술지인 ‘npj 클린 워터(npj Clean Water)’지에 게재됐다.연구팀은 글에 담긴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를 분석하기 위해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과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기술을 활용했다. ’텍스트 마이닝’은 비정형의 텍스트 데이터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추출하는 기술을 말하며, ‘자연어 처리’는 컴퓨터가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 기술들을 활용하여 연구팀은 미국 앨라배마(Alabama)주에 접수된 수질오염 신고서를 분석했다. 앨라배마주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수질오염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민참여형 감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신고는 약 10,000여 건에 달한다. 연구팀은 먼저 코로나 이전, 이상기후가 발생했을 당시 접수된 신고서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17년 앨라배마주에 가뭄 발생 기간동안 부정적인 민원이 평소보다 35퍼센트 증가했음을 확인했다. 또, 2019년 홍수가 발생한 시기에는 부정적인 민원이 전체 기간 대비 약 25퍼센트 더 많이 접수되었다. 실제로 물 부족 현상이 일어나거나 수질이 오염된 시기와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부정적인 민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시기가 일치한 것이다. 이어, 연구팀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사람들이 작성한 신고서도 분석했다. 또, 해당 신고서와 전체 기간 중 무작위로 추출한 표본을 비교했다. 그 결과, 팬데믹 동안 접수된 민원의 수는 전체 기간 대비 현저하게 적었으며, 부정적인 민원의 비율도 30퍼센트 더 적었다. 이러한 경향은 2021년까지 지속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분석 결과는 당시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상황 변화로 인한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와 일치한다. 2020년에는 모든 야외 활동이 제한될 정도로 ‘코로나19 감염 확산 예방’이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 건강 상태에 집중해 자연스럽게 ‘수질오염’ 같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팬데믹이 수질오염에 대한 민원을 접수할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를 변화시켰고, 이러한 심리적 변화를 인공지능이 분석한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로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를 분석한다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번 연구를 이끈 감종훈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의 진화로 이상기후나 팬데믹 발생 시 사람들의 정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환경과 관련된 정부 정책과 기업 운영계획을 수립할 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앞으로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 환경 과학의 융합적 연구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이전에 제시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 및 환경문제 해결 방안들이 제시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한편, 이 연구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4단계 두뇌한국21 사업과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