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건천읍 모량리는 과거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경주에서 대구로 가는 유일한 길인 국도 7호선에 접해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보러가는 길목에 있어 마을에는 역이 있었고 역촌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철도가 생기면서 모량역이 생겼고 이 마을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경주는 물론 동해남부선 경로의 도시를 쉽게 나다닐 수 있었다.모량리에는 보리가 잘 자랐다고 해서 모량(牟良)이라고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행정구역통합 때 일본인들이 나쁜 의도로 모량의 보리 모(牟)자를 털 모(毛)로 고쳐 모량(毛良)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해방되고도 한참을 그렇게 쓰여지다가 1988면 주민들의 건의로 고증을 거쳐 원래의 이름인 모량리(牟梁里)로 변경됐다.
모량리1리는 건천읍의 다른 지역보다 교육여건이 좋은 편이다. 약 60년 전 학군을 조정할 때 모량리가 지정학적으로 경주시와 가깝다는 이유로 중학교 진학을 경주시로 할 수 있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다. 주민의 약 70%는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자영업과 직장인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다.모량2리는 넓은 평야로 이뤄져 있는 마을이다. 따라서 주민 80%가 농업에 종사한다. 당초에는 모량1리와 한 마을로 이뤄져 있다가 동해남부선 철도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커졌고 그때부터 2개의 마을로 나눠졌다.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건천읍이 서면에 속했으며 서면의 여러 마을 가운데서도 모량리가 중심마을이었다. 시장이 있었고 파출소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당시 모량리가 얼마나 번창했는가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 농촌으로 전락하면서 서서히 인구는 늘어나지 않고 최근 수년 동안은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
모량2리에는 시인 박목월의 생가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 태어난 마을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목월의 시를 한두 수 정도는 외며 목월이 걸었던 작은 논밭길을 걷기도 한다. 목월의 시 ‘나그네’는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주민들은 이 시에 나온 강나루와 밀밭길이 바로 모량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목월 생가 입구에 가꿔놓은 밀밭도 바로 그런 의미다.모량리는 단석산 아랫마을로 물이 맑고 토양이 좋아 농사짓기에 좋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의 구석구석이 단석산의 정기를 받은 곳이라고 생각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여기고 산다. 대부분이 논농사를 짓지만 5~6 농가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고 알려진 양송이와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농가다. 또 15 농가는 한우를 사육하는 축산농가로 이 마을 전체 약 10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모량1리 김진홍(59) 이장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인근의 금척리 고분군 성역화 사업이 이뤄지면 목월생가와 단석산을 잇는 새로운 관광벨트가 형성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광객이 유입되고 마을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마을에는 많은 관광자원이 있지만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경상북도나 경주시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모량리는 산업단지와 거리가 멀어 자연환경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KTX경주역과는 불과 4㎞ 정도 인접해 있어 접근성도 좋다. 경주시내까지는 8㎞ 정도여서 경주시의 교육시설과 의료시설, 문화인프라를 이용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마을 안쪽 깊숙이 법흥사가 있다. 1942년 법광스님이 꿈에 신라 23대 법흥왕을 알현하고 지은 절이라 하여절 이름을 법흥사라 지었다고 한다. 이 절은 마을의 평지에 위치해 있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 절의 주지스님은 “모량리에서 신라 왕비 네 분이 났으니 유서깊은 고장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모량2리 마을회관 앞에는 정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이 정자는 사연이 있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살던 모량리의 한 소녀가 결혼한 후 타지로 떠나 살아가다가 어린 시절의 고향마을을 잊지 못해 기증한 정자다. 주민들은 이 정자를 지은 소녀를 기리기 위해 팻말을 달아뒀고 소녀의 고향사랑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이동수 건천읍장은 “모량리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서경주의 중심이라고 해도 좋은 마을”이라며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고 기존의 관광자원을 잘 개발해 주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모량리의 최고령자는 박봉남(99) 할머니다. 박 할머니는 “평생을 이 마을에 살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가 잘 돼 어려움이 없었고 마을사람 모두가 한 가족처럼 화목하게 힘든 일과 기쁜 일을 나누며 지냈다”며 “경주에서 살기좋은 마을로 손꼽히는 모량리가 앞으로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을로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