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장기면 임중리는 ‘숲속의 마을’이었다. 1960년대까지 임중리는 숲안 마을이라고 불렸다. 10리숲인 장기숲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팽나무와 느티나무, 탱자나무가 빽빽하게 이어져 천연기념물인 경남 함양군의 상림보다 두배가 큰 규모를 자랑했다.
장기숲은 장기천에 의해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고 겨울철 북서풍을 막아 경작지의 서리피해 방지 등 논밭을 지키기 위해 조성됐다고 전해진다. 이 숲은 임중리는 물론 인근의 마현리, 신창리 일대까지 방대하게 펼쳐졌다.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정부의 쌀증산정책으로 보물과도 같던 숲이 사라졌다. 숲이 있던 자리를 논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기숲이 큰 들판으로 바뀌어 있다.
임중리는 142 세대, 2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의 90% 이상은 농업인이다. 그나마 농민들은 나이가 들어 폐농을 했거나 젊은 소작인들이 대신 농사를 짓고 있다. 특수작물인 산딸기는 유명하다. 당도가 높고 과육이 단단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에는 20~30 농가가 산딸기 농사를 지었지만 연작으로 나무가 노령화되고 뿌리혹병이 생겨 지금은 10가구 정도만 산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새장터는 임중리의 중심이면서 한때는 남포항의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원래 장기면의 장터는 읍내리에 있었지만 1950년쯤 장기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이곳으로 장터를 옮겨 새장터라 불렀다. 1960~1970년대에는 장터를 중심으로 상업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심지어 소매치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융성했던 시장터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시장에서 팔리던 주요 물목은 오징어, 미역 등 수산물이 많았고 농산물도 다양했다. 거기에 우시장이 섰고 가을에는 홍시가 많이 팔렸다. 인근의 오천시장보다 컸고 심지어 경주시 문무대왕면에서도 이 시장까지 물건을 사고 팔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장기시장이 쇠톼한 것은 교통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60년대 오천읍에 해병대 사단이 주둔하면서 오천읍이 급속도로 발전했고 상대적으로 인구 유출이 일어나면서 시장의 경기는 점점 시들해졌다. 농경사회에서 상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이농현상이 가속화된 전형적인 사례로 보인다. 지금도 4일과 9일에 5일장이 들어서지만 과거의 번성함은 찾을 수 없게 됐다.
임중리의 마을 인심은 예로부터 좋았다고 소문이 나 있다. 포항시로 통합되기 전 영일군이었던 시절 공무원이 장기면으로 임명을 받아 오면 ‘울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말이 있었다. 남포항의 최고 오지였던 지역으로 임명받아 울고 부임했지만 근무를 하다 보면 주민들의 인심이 너무 좋아 깊은 정이 들고 임지를 떠날 때에는 주민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울었다는 이야기다.
임중리에는 아직 귀농 귀촌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논 중심으로 정리된 토지사정이 귀농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중1리의 경우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많고 텃밭 조성이 가능한 자투리 땅도 있어 앞으로 귀촌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석영(73) 전 장기농협 조합장은 “임중2리에는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이 펼쳐지고 있다”며 “장기시장 환경개선 사업과 장기천 고수부지 경관사업, 장기숲 공원조성, 꽃길 조성, 게이트볼장 조성 등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어 이 사업이 완성되면 살기좋은 마을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서 전 조합장은 “여기에 마을 남쪽에 있는 역곡지에 둘레길 등을 조성해 가꾸면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라며 “역곡지는 이 마을의 농업용수를 감당하는 저수지인데 청송 주산지처럼 경관이 좋기로 유명하고 경관이 빼어난 역곡지를 제대로 가꾸면 관광자원으로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곡지 계곡에 국구암이라는 석굴도 유명하다. 높이는 약 10척, 폭은 약 20척, 깊이는 약 15척 정도의 방원형 석실은 한 사람이 들어가 지내기에 가능하다. 조선시대 마미라는 한 도승이 임진왜란을 피해 이 석굴에서 수도를 하고 있을 때 석굴 천장에서 쌀이 한알씩 떨어졌는데 하루동안 모으면 한사람의 끼니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절친한 친구가 찾아왔는데 양식이 걱정된 도승은 쌀 구멍을 크게 하면 쌀이 많이 쏟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팡이로 그 구멍을 파 버렸는데 쏟아질 것으로 믿었던 쌀은 나오지 않고 그때부터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재미난 전설을 가진 곳이다.
마을 길가에 위치한 김사민 정효각은 이 마을의 정신유산이다. 부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극진한 효를 행했던 김사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98년에 비각을 세웠다. 김사민은 어릴 때부터 효심이 깊었는데 열다섯 살 때 부친이 병이 나 자리에 눕게 되자 의원이 두꺼비를 약으로 쓰면 쾌차할 것이라 말했지만 엄동설한에 두꺼비를 구할 수가 없었다. 김사민이 하늘에 정성껏 기도하자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두꺼비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줘 부친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었다 한다.
정종영 장기면장은 “장기면은 남포항의 상업 중심지로 예로부터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소중한 지역이었다”며 “임중리는 장기면의 상업과 교육의 중심마을 역할을 했고 지금도 살기좋은 마을로 잘 보존돼 앞으로 많은 이들의 귀촌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