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봉산의 아늑한 품에 안긴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는 조선 말 유림의 대표 인물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해방 후 교육자이면서 민주화 운동을 펼친 심산 김창숙 선생의 출생지다. 칠봉리 사람들은 김창숙 선생과 조선시대 선비로 정신문화를 이어왔던 그의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양반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146세대 264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칠봉리는 대부분이 농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그중 참외 농가가 약 40가구다. 2021년 통계청의 농작물생산조사에 따르면 성주군의 참외 농업은 2021년 기준으로 전국 참외농업의 77.6%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생산량도 15만2770톤으로 전국의 80%에 이른다. 또 성주참외소득분석 내부 행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성주군의 전체 참외농가의 조수입은 지난해 5763억원이다. 성주군의 1년 예산이 6000억원 정도임에 비한다면 엄청난 경제규모다.지난해 성주군의 전체 참외농가는 3841가구인 것으로 본다면 칠봉리의 참외농가 수는 미미하지만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머지 농가는 대부분 은퇴농이 많다. 고령화의 영향이다. 하지만 다른 농촌의 인구에 비해서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칠봉리 주민들의 전언이다.
약 30 세대 정도는 귀농·귀촌 인구다. 가까운 대구나 인근 도시의 퇴직자들이 전원생활을 즐기기 위해 칠봉리를 찾은 경우다. 칠봉리는 중부내륙 고속도로 성주IC와 불과 2㎞ 안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또 성주 중심지까지 10분 안에 닿을 수 있고 대구 시내까지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대구 지하철 2호선 종점인 문양역까지 15분 거리에 있어 문양역에서는 지하철로 대구 방문이 충분히 가능하다.칠봉리는 ‘심산 김창숙 선생의 고향’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만큼 마을 전체가 김창숙 선생의 향기로 가득하다. 김창숙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해방 이후 정치가, 시인, 교육자로 활동했으며 성균관대학교 초대학장을 지냈다. 칠봉리 주민뿐만 아니라 성주군민들은 모두 김창숙 선생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끼친 영향과 업적을 존경한다.
김창숙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로 올라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성토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이 사건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09년 성명학교를 창립해 육영사업을 시작했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이 되고, 이듬해 귀국해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다가 제1차 유림단사건으로 체포됐다. 또 1927년 상하이 주재 일본영사관원에게 붙잡혀 본국으로 압송돼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에 광복을 맞았다.해방 후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의원을 역임했고 유도회(儒道會)를 조직해 회장과 성균관장을 역임했다. 이때 성균관대학교를 창립해 초대학장으로 취임했다. 6·25전쟁 후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경고문 사건으로 부산형무소에 40일간 수감됐고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 일어나자 반독재호헌구국선언을 발표하는 등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마을 한가운데 김창숙 선생의 생가가 있다. 생가를 중심으로 약 5만평 부지에 심산 문화테마파크를 조성 중에 있다. 심산 휴(休) 문화센터와 칠봉산 휴 테마관이 들어서면 경북지역 생산유발효과는 411억원, 취업유발효과 258명, 부가가치유발 13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관광객은 연간 6만5000명이 방문할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칠봉리에서 4만원씩 소비할 경우 연간 260억원의 소비지출 효과가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테마파크가 완성되면 칠봉리 주민들의 경제 수준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칠봉리는 조선시대 대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과 동강(東岡) 김우옹(金宇)선생를 배출하기도 했다. 동강 선생은 김창숙 선생의 13대 조부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김우옹 선생이 세운 청천서원이 있다. 마을의 언덕에 위치한 청천서원은 김우옹 선생의 품격에 걸맞게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서원의 편액은 김창숙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던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이다.
김창숙 선생의 생가와 가까이 김창숙 선생이 세운 사립학교 성명학교가 있다. 1910년 9월에 개교한 이 학교는 ‘성주를 개명시키는 학교’ 혹은 ‘성주의 개명 학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성명학교가 개교하자 지역의 유생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김창숙이 나와서 청천서원이 망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창숙 선생은 “유림의 뜻만 순종하느라 사방에서 배우러 오는 학생들을 거절하기보다는 신진 영재를 양성해서 새 시대에 통하는 선비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라고 맞섰다고 한다.
칠봉리의 주도로의 이름은 ‘동강 한강로’다. 정구 선생과 김우옹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 지은 이름이다. 이 도로는 성주군 벽진면에서 수륜면까지 이어진다.칠봉리 노인회 김영(78) 회장은 “김창숙 선생의 나라사랑과 선구자적 정신이 칠봉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며 “이 자부심은 단순히 칠봉리만의 자랑이 아니라 성주군, 나아가서 경북 전체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백종국 대가면장은 “유서 깊은 칠봉리는 성주군의 정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며 “최근 들어 귀촌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을 분위기가 젊어지고 있고 테마파크가 완공되면 무한한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