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덕곡면 예리는 풍광이 빼어난 마을이다. 북쪽으로는 가야산 자락을 끼고 그림같은 농촌 풍경이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대가야읍에서 진입하는 도로의 가로수가 대부분 벚꽃나무여서 봄이면 환상적인 꽃길이 펼쳐진다. 예리는 덕곡면의 면소재지로 중심마을이다. 그러면서도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촌마을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이 간직돼 살기 좋은 마을임이 분명하다. 예리의 마을 이름은 이 마을을 개척한 이안징이 예(禮)를 지켜 동방의 모범이 되라는 뜻으로 예동(禮東)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된다. 99세대 16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예리는 약 5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나머지는 자영업자거나 직장인들이다.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쌀인 옥미라고 하며 조선시대의 진상품이었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딸기와 블루베리, 한라봉, 양파, 마늘 등 특용작물을 재배한다. 예리는 가야산 자락에 위치해 일교차가 커서 특용작물, 특히 딸기나 블루베리 등은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가야산 줄기의 약초를 먹고 자라는 한우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예리의 농부들 가운데는 억대의 농사를 짓는 이들도 간혹 있어 다른 농촌과 달리 부농들이 사는 동네라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덕곡면 예리는 고령군에서 가장 덜 개발된 지역이다. 반면에 자연 그대로 보존된 청정지역이어서 외지인들의 귀농·귀촌이 많은 지역이다. 주민들은 잘 보존된 자연환경을 더욱 가꾸기 위한 주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경관 보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공한지 꽃 심기 등 마을을 가꾸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청정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켜온 예리의 환경은 유용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예리에 있는 덕곡행복센터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마련한 복합문화공간이다. 고령군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덕곡면에 문화적 향기가 가득하게 피어나는 것은 또 하나의 장점이다. 이 공간에서는 북콘서트, 명사초청강연, 지역작가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열린다. 또 예다원이라는 주민 카페가 있어 주민들은 물론 이 마을을 찾는 이들의 중요한 휴게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같은 문화적 분위기로 예술가들이 이 마을에 정착하는 예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작가, 동판공예가, 민화 화가 등이 이미 이 마을에서 살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리에는 기초생활거점 조성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1차 사업으로 행복센터가 건립됐고 도로 개선 등 전반적인 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이 이뤄져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됐다. 여기에 2차 사업으로 1차 사업에서 조성된 인프라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3년간 2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노후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고 활용이 저조한 공간들과 유휴시설을 주민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예리 끝자락에 가면 소가천 제방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제방변에 소공원이 조성됐다. 이 공원은 맨발공원이라고 부른다. 예리의 맨발공원은 이미 소문이 퍼져 마을 주민 중심으로 동호회가 생겼고 이웃 마을에서도 찾아와 맨발걷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예리의 뒷산에는 예리산성이 있다. 이 산성은 대가야시대의 석축 산성으로 예리의 중요한 역사문화 자산이다. 대가야시대에 신라군이 침입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예리산성을 축조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는 설화가 전해오기도 한다. 예리산성과 관련한 설화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 장군을 대장으로 삼아 대가야 정벌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대가야 사람들은 예리 뒷산에 산성을 구축해 신라군에 맞서려 했으나 산의 경사가 너무 심해 산성을 쌓는 것이 어려웠다. 이때 염력을 쓰는 도인이 자기가 산성을 구축하겠다고 하니 대가야에서는 그 사람에게 산성을 쌓게 했다. 하지만 신라의 염탐군이 이 사실을 알고 매월이라는 젊은 여자를 보내 도인을 미인계로 유혹했다. 미인의 유혹으로 도인은 술에 탄 독약을 먹고 죽어버리고 대가야는 망하고 말았다. 대가야 멸망과 연관된 설화를 간직한 예리산성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배철헌 전 고령군 의원은 “고령군에서 덕곡면은 소규모 마을이어서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주민들이 단합해 주어진 환경에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며 “작지만 강한 마을, 아름다운 고장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은 하나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광호 덕곡면장은 “예리는 고령군에서도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마을이며 주민 복지가 잘 구축된 마을이어서 누가 와서 살아간다고 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마을”이라며 “다양한 사업을 통해 예리가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농촌 마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등교사였던 최희경(60)씨는 23년 전 예리에 정착했다. 천주교 신자인 최씨는 이 마을을 찾았다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덕곡공소를 보고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예리에 집을 짓고 20년을 대구의 직장으로 출퇴근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예리 생활이 행복했다”며 “생활 그 자체가 힐링이었고 예리가 힐링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달빛으로 생긴 나무 그림자를 따라 골목길을 걸을 수 있는 행복. 새소리를 벗 삼고 창을 열면 개구리 소리가 가득 밀려오는 예리는 우리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고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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