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근남면 노음리는 울진읍내와 불과 4㎞ 정도 인접해 있어 시골마을이라고 말하기에 어렵다. 10분이면 읍내에 닿을 수 있고 국도 7호선에 연결돼 있어 인근 도시와 왕래도 수월한 편이다. 노음1리는 마을 앞에 큰 들이 있었다고 해서 ‘장평(長坪)’이라고 부른다. 노음2리는 15세기 다섯명의 영양 남씨 노인이 마을을 이끌어갔다고 해서 ‘오로(五老)’라고 부르고 노음3리는 16세기 이 마을이 처음 개척될 때 가뭄이 극심해 모든 곡식이 말라버려 ‘마름’이라고 불렀다가 한자로 ‘매림(梅林)’이라고 쓰고 부른다. 노음리는 440세대 8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노음1리는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어 246세대 483명의 주민이 살아 절반 이상의 인구가 밀집해 있다. 노음1리의 주민들은 주로 상업을 하면서 살고 있다. 식당 등의 요식업과 매점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있고 나머지 상당부분의 주민들은 울진읍내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다. 노음2리와 3리는 농업 중심의 농촌이다. 70~80%의 주민이 농사를 짓고 있고 벼농사가 주요 작물이다. 울진군의 브랜드 쌀인 울진생토미 중 약 20~30%가 근남면에서 생산되고 있고 주로 노음2, 3리에서 자란 쌀이다. 울진생토미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농법을 이용해 기존의 유기농법과는 싹을 틔우는 방법부터 차별화된 방법을 이용하는 울진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농법의 대표 주자다. 노음리는 울진의 상징적인 하천인 왕피천을 끼고 있다. 왕피천은 울진군의 광역상수원이며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아 은어, 꺾지 등의 민물고기가 자생한다. 지금은 울진군에서 공원화 계획을 가지고 있어 노음리의 경제활동이 더 왕성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1960~1970년대는 노음리의 가장 번창했던 시기다. 농경사회 위주의 경제활동을 펼쳤고 외부 취업도 저주해 근남면 전체 인구가 2000여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 중 근남면의 중심마을인 노음리에 가장 많은 주민이 살았다. 그러다가 1988년 올림픽이 열리고 나서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젊은이들은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인구감소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노음1리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서면서 인구는 다시 불어나기 시작했다. 외부 주민이 유입됐지만 마을에서 갈등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은 마을에서 이뤄지는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음리는 울진군의 ‘관광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류굴과 망양정, 왕피천 등 우수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관광동굴인 성류굴은 천연기념물이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발달한 석회동굴인 성류굴의 전체 길이는 약 870m고 그 중 270m가 개방돼 있다. 동굴 내부에는 석회동굴에서 흔히 발견되는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진주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있다. 특히 성류굴에서는 국내의 다른 석회동굴과는 달리 파괴된 석주와 물에 잠겨 있는 석순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파괴된 석주는 가운데 부분이 어긋나 있는데, 이는 석주가 만들어진 후 발생한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서 어긋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망양정은 인근 마을인 산포리와 겹쳐져 있다.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망양정은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며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했다. 또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했고 숙종과 정조는 직접 망양정을 소재로 시를 지을 정도였다.남효천(58) 농협 근남면지점장은 “노음리는 울진군의 보배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관광지가 많고 경제활동도 왕성하다”며 “울진군이 조화롭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음리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정주여건을 더욱 잘 활용해 다듬어서 외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응영(61) 노음3리 이장은 “인심이 좋고 평화로운 마을인 노음리가 울진군에서 가장 살기좋은 마을로 남기 위해서는 울진군의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며 “주민들도 노음리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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