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쉬지 않고/ 오로지 썩는 일에만 몰두하여/ 겨울에도 뻘뻘 땀 흘리며/ 썩으면 썩을수록 더욱 정신 차려/ 논 밭으로 나가/ 쓰라린 속이 기쁨으로/ 열매 맺힐 때까지 사는 것들’  -정영상, 시 ‘두엄’ 중에서.이 세상 열매들을 위한 ‘두엄’ 같은 삶의 길로 나아갔던 정영상 시인은 가고 없다. 그가 떠난 지 서른 해를 맞이했지만 다시 읽어도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시인의 글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다독인다.1956년 포항시 대송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989년 작고한 시인 정영상은 ‘아들로서, 지아비와 아비로서, 시인으로서 미완에 그쳐버린’ 37세의 짧은 생을 살고 떠났다. 최근 시인의 30주기를 추모하며 ‘정영상문학전집: 감꽃과 주현이(아시아)’가 출간됐다. 이번 문학전집 발간에는 ‘정영상 시인을 널리 알리고 오래 기억해야 한다’는 고향 선후배 몇 사람과 출판사 아시아의 뜻이 모아졌다. ‘형이 입던 교복 바지 떨어진 것이나 아버지가 입던 헌바지를 내복 대신 속에다 하나 더 껴입던 시절이라 아랫도리에 바람이 썰렁하게 지나갔던 우리들의 겨울, 볏짚은 따뜻했다.’ -산문 ‘볏짚’의 첫 부분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시집들과 산문집을 새로 디지털화해 엮어낸 이번 시집에는 정영상의 시 255편과 희소하고 귀중한 산문 18편이 수록돼 있어 시인의 문학 세계 전반을 아울렀다. 이번 전집 산문편에선 유고 산문집 ‘성냥개비에 관한 추억’으로, 제1부에는 그의 시적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고향 풍경과 유년 이야기들을 맨 앞에 배치했다. 이어진 시편들은 시집 세 권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제1시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제2시집 ‘슬픈 눈’, 유고 시집 ‘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 유고 산문집의 제2부에 모아둔 전우익 선생·신경림 시인·박원경 교사(정영상의 부인)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정영상의 편지들과 제3부에는 모아둔 단상들을 싣고 권순긍 문학평론가의 ‘정영상론’으로 마무리했다. 신경림 시인은 정영상 유고 산문집의 발문에서 “글 어느 한 편을 읽어도 한 자 한 자 박아 쓴 장인의 손끝 같은 것이 느껴진다. 마치 귓가에서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 같은 나무와 벌레와 작은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따뜻한 얘기들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썼다. 이번 전집을 엮은 이대환 소설가는 “유년시절에 체화한 집안이나 이웃 농민의 빈궁 현실에 대한 쓰라린 애절과 직시의 고통과 교편을 잡은 1980년대의 독재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지와 극복의지를 담은 시 255편은 타고난 순정의 논밭에 자라난 곡식들이다. 순정성, 이것이 사람 정영상의 진면모”라고 평했다. 권순긍 문학평론가는 정영상론에서 시적 대상에 대한 애정과 섬세한 눈길이 정영상 시의 토대며, 미술교사로 평생 그림을 그렸던 관찰력에 기인한 섬세한 손끝에서 하찮은 농촌의 사물들이 생명을 얻고 되살아나 새로운 ‘농부가(農夫歌)’로 탄생했다고 했다. 정영상 시인은 1956년 경북 포항시 대송면 출생으로 공주사범대학 미술과를 졸업하고 ‘율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교편을 잡았으나 1989년 전교조 관련으로 해직됐다. 1984년 ‘삶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해 1989년 첫 시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를 펴내고 두 번째 시집 ‘슬픈 눈’을 냈으나 1993년 심장마비로 영면에 들었다.1993년 유고 산문집 ‘성냥개비에 관한 추억’, 1994년 유고 시집 ‘물인 듯 불인 듯 바람인 듯’이 출간됐고 2003년 정영상 시비가 공주대학교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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