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보도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운동 4일만에 1만 2000여명이 동참한 것으로 ‘지난 14일 기준으로 그 모금액이 26억 4000만원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모금에 동참한 전북 부안 출신의 신단여(75)씨는 지난 13일에 이승만 대통령 기념재단 후원계좌에 500만원을 쾌척했다. 
 
그러면서 신씨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모금 소식을 조선일보를 통해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면서 천국에 계신 아버지가 이런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딸인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동참할 수 있어 가슴이 벅차다”면서 소감을 전했다. 평소 아버지께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은 없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제가 딸이어도 원없이 공부할 기회를 누렸던 것도 남녀평등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이 대통령의 말씀 덕분이라고도 언급했다.신씨는 후원금 외에도 특별한 사진 한 장을 재단에 기증했다. 기증한 사진은 애국청년회 회원이었던 신씨의 부친이 1946년 6월 5일 전북 전주를 방문한 이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처음 공개했는데, 이 사진을 살펴본 연세대 이승만 연구원은 “학술 자료로서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 했다. 신씨는 “가보처럼 소중하게 보관해 왔던 사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기쁘다며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이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더 많이 참여 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필자는 신씨의 이러한 간절한 동참 독려에 뜻을 같이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이번주에 모금 50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1945년 해방이후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이 아닌 ‘수립’됐다는 또 다른 입장도 있으나 필자는 전말은 생략하고 이승만 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제12대 회장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재론의 여지 없이 그 뜻을 분명히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함은 한번도 정치노선에서 민족주의(nationalism)를 고집한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위대한 두 대통령은 자연에서처럼 정치에서도 미국처럼 잡종(雜種)이 순종(純種)보다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 바탕위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 발전의 축으로 나라를 세우고 그것이 부강한 국가의 초석이 되었다.
 
역사에 가정법은 온당치 않을 수도 있지만 종북좌익 주사파세력을 빼고는 대한민국 건국 역사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빼고는 21세기 자유대한민국 세계무역 대국 10위의 기적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1950.6.25남침으로 인한 풍전등화 앞의 남한을 지켜낸 그래서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트루먼, 한미 양국의 두 전직 대통령 동상이 지난 7월 경북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들어섰다. 보도에 의하면 동상이 자리 잡자 한달 후인 지난 8월에는 5만여명이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찾았으며 이는 지난해 8월 대비 다섯배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한편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이자 반격이 시작된 다부동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1981년 건립 되었는데 여기에 크게 아쉬운점은 6.25남침 3일만에 서울이 적의 수중으로 함락되고 파죽지세로 남진하던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에서 백선엽 장군과 함께 막아내면서 부하들에게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던 초대 미8군 사령관이었던 워크장군 동상도 같이 조성했어야 했다. 이 전투는 1950년 8월 18일 밤부터 23일까지 7차례 맞붙었다. 이때 국군 2300여명과 미군 1282명이 전사하고 북한군도 전사자가 5690명이었다. 이 치열했던 낙동강 전투의 방어선을 지켜냈기 때문에 9월 15일 새벽 항공모함, 구축함, 순양함 등 8개국 261척(미국 225, 영국 12, 캐나다 3, 호주2, 뉴질랜드1, 프랑스 1, 한국 15)의 함정과 7만여명의 병력이 맥아더장군의 지휘 아래 작전 성공률 5000분의 1(0.002%)이라는 천신(天神)의 기적같은 도움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발판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워크장군은 1950년 12월 전방시찰을 위해 의정부로 향하던 도중, 타고가던 지프가 한국군 차량과 충돌하면서 61세의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지금 대구 미8군 부대를 워크장군의 이름을 따서 캠프워크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는 않된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워크장군의 동상도 하루 속히 조성되어야 한다.그래서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지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9월15일 취임 후 처음으로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행사가 열린 해군 상륙함 노적봉함에 헬기를 타고 도착해 행사장으로 이동 전쟁의 총성이 멈춘지 70년이 지난 지금 자유와 평화는 다시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전승행사 주관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참전국군과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자 하는 윤대통령의 의지로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는 장병3300명이 인천상륙작전을 시연했는데 한미장병들과 시민1300여명도 대형 수송함 독도함에 탑승한 채로 행사에 함께했다. 이와 더불어 인천시는 이날 2025년 75주년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를 참전 8개국 정상을 초청하는 등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 행사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밝혔다.필자는 2019년 6월 6일 미국에서 치러진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행사에 피티피아이를 창설한 미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손녀와 함께 참석한 일이 있는데, 그 때 나는 속으로 우리들은 왜 5000분의 1의 가능성을 가지고 성공시킨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기념행사는 언제면 할 수 있을까라고 했는데, 그 뜻이 2025년 75주년이 되는 해에 인천시가 대규모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그래서, 필자는 주제를 ‘자유대한 민국의 정체성에 서광(瑞光)이 보인다’라는 기고문을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