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낙동면은 상주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의성군, 구미시와 접하고 있다. 낙동강이 만들어 준 비옥한 토지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경쟁력이 있는 농축산물을 생산하고 있어 풍요롭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유곡리는 128가구 22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비록 적은 수의 주민들이지만 이 마을의 주민들은 전국에서도 가장 품질이 우수한 상주곶감과 낙동한우 등을 생산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유곡리의 주민들은 거의 10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축산, 과수, 시설원예 등이 발달돼 있고 그중에서도 한우와 육계 등을 사육하는 대규모 축산농가가 있어 소득수준을 높이고 있다. 한우농가는 6개 농가에 약 600마리를 사육하고 있고 육계농가는 3개 농가에 약 13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돼지를 키우는 농가도 있다. 3개 농가에 2600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양돈농가는 악취로 지역민들의 민원사항으로 떠올랐다. 주민들은 농촌공간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주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고 낙동면에서 이를 주요 민원으로 받아들여 대체부지를 마련 중이다.
유곡리의 농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감농사다. 이 마을의 감은 전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고 알려진 상주곶감을 만드는데 쓰인다. 유곡리에서 생산되는 곶감은 연간 약 1200톤 정도로 낙동면 전체의 50~60%,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유곡리의 곶감농가는 30가구 정도다.30여년 전만 하더라도 유곡리의 전체 감농가는 모두 곶감생산을 병행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령화되면서 곶감생산은 그만 두고 생감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곶감농가도 가내수공업에서 대형화 되는 추세다. 유곡리의 곶감생산 농가 중 100동 이상을 생산하는 농가는 5개 농가다. 1접은 100개고 1동은 100접을 말하니 100동은 곶감 100만개에 해당된다.유곡마을의 곶감농가는 3~4대를 이어서 곶감을 생산해 왔다. 전통 제조방식으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으니 그 맛과 품질은 더할 나위없는 것이다. 또 직접 감을 재배해서 곶감으로 만들어내니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자체 브랜드화를 거치지 못해 아직은 명품 곶감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농가의 생산량 50% 이상은 직거래를 통해 팔려 나가고 나머지는 농협 등을 통해 위탁판매가 이뤄진다. 이들 농가는 1가구당 조수익이 연간 2억~4억에 이른다.육계농가는 전국에서 가장 일찍
대형사육을 시도했다. 이곳의 육계농가는 계약사육을 통해 대형 생닭 브랜드에 납품한다. 유곡리의 또 다른 명품은 낙동한우다. 약 30년 전 이 마을에 건국대학교 축산과 출신의 송재원씨가 정착하면서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철저하게 과학 영농을 통해 한우의 육질을 높임은 물론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까지 철저하게 선진화된 축산업을 정착시켰다. 송씨의 지도로 한우를 기르는 농가가 생겨났고 13명이 ‘고우회’를 조직하면서 본격적인 축산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또 이곳에서 생산하는 한우를 직판하기 위한 영농법인도 생겨났다. 낙동강한우 직판장은 유곡리와 인근 마을에서 출하하는 한우와 직판장에서 팔려나가는 한우의 소비량과 거의 같아 도축 후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 그래서 책임 생산과 품질보증이 확실해진 것이다. 낙동강한우는 고품질을 자랑한다.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고급 등급의 소고기를 판매함으로써 전국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낙동강한우는 지역 소비자가 10%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간다. 심지어 제주도까지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유곡리에는 매우 단아한 모습의 삼층석탑이 있다. 고려시대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지금 있는 자리의 논 가운데에서 기울어진 상태로 곧 무너질 것으로 보이던 1994년에 가까스로 북원한 것이다. 상하 2층 기단 위에 탑신을 받치고 있는 네모진 일반형 석층석탑은 경쾌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탑이 있는 곳의 뒤편인 갑장산의 기슭이 절터였다고 전해지지만 사찰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석탑만 남아 있다.
유곡리에서 구미시의 경계에 있는 ‘서울나들이’라는 마을은 매우 정겨운 농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을은 상주 사람들이 선비가 과거를 보러가거나 보부상이 등짐을 지고 물건을 팔러 갈 때 문경새재를 넘어 반드시 거쳐가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또 고위 공직자들이 많이 태어나서 자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선희 유곡1리 이장은 “유곡리의 주민들은 근검절약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업에 최선을 다해 왔다”며 “마을의 연세 드신 어르신들 가운데 거액의 저축을 하신 분들이 많고 농사를 지으시면서 평생 다방 한 번 드나들지 않고 오로지 농사일에만 헌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서로 돕고 힘을 나누면서 불편하지 않은 농촌마을을 만들고 어르신들이 더욱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더욱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이상윤 낙동면장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농촌마을인 유곡리가 앞으로도 더욱 잘사는 농촌이 될 수 있도록 주민들과 깊이 소통하겠다”며 “주민들이 원하는 농촌공간 정비사업을 조속히 펼쳐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데 각별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