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유곡동은 조선시대 유곡역도(幽谷驛道)의 찰방이 있던 마을로 유명하다. 유곡역은 문경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유곡역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문경시에서 남쪽의 상주시 방면과 동쪽의 예천군을 거쳐 의성군 및 군위군으로 통하는 곳에 있던 역을 관할했다. 유곡역은 영남지방과 한양을 오가는 사람들이 통과하던 교통의 결절점 역할을 수행했으며 사람의 이동이 많은 구간이었던 만큼 주변에는 숙박시설인 원이 여러 곳에 설치됐다.
영남지역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곡역을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야 했고 한양에서 영남지역으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갓끈을 풀고 유곡역에서 하룻밤을 쉬어야 했다. 인든의 문경새재에도 원이 있었지만 주변에 도적이 끓어 유곡역에서 하루를 묵고 이른 아침 무리를 지어 새재를 넘었다고 전한다. 영남에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은 죽령과 추풍령을 넘지 않고 반드시 새재를 넘었다고 한다. 죽령은 ‘죽을 쑬까’ 겁이나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쩔어질까’ 두려워 회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마을인 유곡동에는 291가구 51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과거 번다했던 역마을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다양한 흔적과 유적이 남아 있어 주민들의 자부심은 매우 크다. 인근의 불정동에 있던 대성광업소가 폐광했던 1995년 전에는 800명 이상의 주민이 살았다고 하니 작은 마을은 아닌 셈이다.
유곡동의 50가구 정도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촌마을 치고는 전체 인구에 비해서 매우 적은 숫자다. 이 마을의 주민들이 대부분 65세 이상의 고령자들이어서 사실상 폐농을 한 것이다. 30가구 정도는 사과농사를 짓고 있다. 과거에는 부사 위주였으나 감홍으로 품종을 바꾼 후 문경사과의 우수성에 동참하고 있다. 감홍은 보관기간이 짧아 10월 초에 수확해서 10월말~11월초에 판매 완료해야 한다.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10월에 열리는 문경사과축제에서 어김없이 완판을 이룬다. 또 병충해에 취약하고 붉은색 착색이 쉽지 않아 문경지역 외에는 재배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유곡동에는 아쉽게도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힘든 마을로 변해버렸다. 신생아 출생 수가 2019년에는 1명, 2020년에는 4명, 2021년에는 0명, 지난해에는 3명이었고 올해는 아직 1명도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귀농·귀촌 가구가 5가구 정도에 이르고 서서히 유곡동을 찾는 외지인들이 많아 퇴직자의 은퇴생활이나 전원생활을 즐기기에 적합한 도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유곡동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국도 3호선이 통과해 교통 환경이 좋고 문경 중심지까지 약 7㎞, 10분이면 닿을 수 있어 도시생활이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는 젊은 인구의 유입도 충분히 가능한 마을로 여겨지고 있다.
유곡동은 과거 유곡역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주민들은 찰방과 마방이 있던 자리와 찰방의 관리들이 살았던 자리를 분병하게 기억하고 있다. 점촌북초등학교 앞에는 19개의 비석을 모아둔 비석거리가 있다. 이 비석들은 유곡역과 관련된 것들이다. 주변의 여러곳에 방치돼 흩어져 있던 것들을 1962년에 마을의 뜻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모아졌다. 비석은 관찰사 김공연 무휼역졸비, 순찰사 김상국 대근 애휼역민비, 순찰사 이상국경재 거사비, 군수 깅후영계 애민선정비, 요곡지 공로자 노시출 불망비 등이 있다.
유곡동 마을 입구에는 큰 느티나무 2그루가 서 있다. 수령 300년이 된 이 나무는 지난 1982년 마을의 보호수로 지정됐다. 이 느티나무는 역참의 위리를 알리는 거리를 표시하는 증표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나무 아래에 조선전기의 문신 우암 홍언충의 유곡역관이라는 시를 새긴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우암이 유곡역을 방문해 지었다는 시의 내용은 일침청풍고관리(一枕淸風孤館裏, 한 베개 맑은 바람 외로운 객관 속에), 삼배박주노괴변(三杯薄酒老槐邊, 늙은 괴목 가에 박주 석잔 기울였네), 차행미료생환일(此行未料生還日, 이 걸음에 살아 옴을 내 어이 생각하랴), 만사유유지부천(萬事悠悠只付天, 유유한 만 가지 일일랑은 하늘에다 부치련다)이다. 우암은 연산군 시대 대제학을 지낸 홍귀달의 아들로 사화에 휘말려 귀양을 가다가 유곡역에서 머물면서 이 시를 지었다. 양주동 박사가 역해한 이 시는 우암고와 문경현지에 수록돼 있다.
이상목 유곡동 노인회장은 “유곡동은 점촌의 가장 유서깊은 지역으로 유곡역도의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문화유적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서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주원 점촌4동장은 “유곡동은 점촌4동의 중심마을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요구를 세심하게 살피고 적극 수용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소중한 자산을 가진 유곡동이 문경새재와 연계한 중요한 관광거점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