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색 양주 유리병을 수건에 싸서 파쇄한 다음, 파쇄된 모양을 그대로 패널에 부착하는 등 또 다른 의미연관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린다. 경주 갤러리 라우(대표 송 휘)는 사물들의 용도를 박탈하고 재구축하는 과정을 통해 조형의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추구해 온 박종태 조각가를 초대해 15일부터 31일까지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에서 박종태 작가는 책이나 문서 등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파쇄한 후 파쇄지를 조합해 새롭게 재현한 작품 15점을 선보인다.조각가 박종태는 파쇄한 종이를 이용한 다양한 입체작업으로 인지도가 높은 작가다. 그는 청년작가 시절부터 남다른 시선으로 사물들을 관찰해왔고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사물들의 구조를 해체해 또다른 조형적 요소를 드러내는 일에 천착해왔다. 그에게 있어 만든다는 행위는 부수는 행위 이후의 재창조라는 문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이처럼 파쇄된 종이들을 먹과 수성물감, 수성접착제를 이용해 패널 위에 일일이 쌓아 올린다. 직접 손으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손자국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두께와 요철이 고르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이 또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즉, 손의 사유를 통한 마음의 흔적들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해 감상자들로 하여금 종이의 지층에 쌓인 작가의 노동과 정신의 질량을 가늠케 한다. 작가 자신이 작업을 통해 쌓아간 수행의 노정만큼 감상자도 직관할 수 있어, 선(禪)적인 평정심으로 유도한다. 검정색, 회색, 흰색, 붉은색의 입체 그리드(grid) 작품들은 톤을 달리하면서 설치되는데 이 작가의 그리드는 마음의 상태와 색채감정을 표현하는 악보와 같은 것으로, 텍스트 해체 이후의 또 다른 텍스트를 만날 수 있는 장치다. 장미진 미술평론가는 “이 작가의 작품들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양의 전통매체인 먹을 주로 사용해 우주의 현색(玄色)이 품고 있는 정신적인 깊이와 현대적 감각을 아우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동‧서양 예술사유의 조화로 빚어낸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감응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박종태 작가는 영남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 전공, 미술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개인전 10회와 국내외 전시 및 단체전 15여 회에 참여했으며 경북예술인상, 한국을 이끄는 혁신리더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빈조형 대표로 청도군미술협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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