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지식, 표현, 대화의 수단이면서 관용과 문화간 대화를 증진시키는 역할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독서의 힘은 한 개인의 역량을 고양시켜 줄 뿐 아니라 개인이 소속된 조직의 능력을 상승시키고, 그 조직과 결속돼 국가의 힘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려 주게 된다. 독서력이 한 나라의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독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범하게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실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가운데는 책의 노예나 애인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책을 꿰뚫어 보고 부리고 통합하고 융합했던 독서 고수들이 적지 않았다. 세종 대왕과 다산 정약용, 헬렌 켈러, 모택동, 에디슨, 링컨, 율곡 이이, 함석헌, 양주동, 김현 등이 그런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도 누리기도 하고, 반대로 빨리 깊게 읽을 줄도 알았으며, 다른 주제의 열 권의 책을 동시에 읽거나 같은 주제의 책을 두 권 이상 동시에 비교하면서 읽는가 하면, 한 번에 열 줄 이상을 동시에 읽어 내려갈 줄도 아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가장 많은 책을 낸 사람은 조선 시대의 혜강 최한기다. 그는 평생 1천 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그 원동력은이 바로 독서였다. 조선 시대에 가장 좋은 책들이나 귀한 책들은 그의 집에 거의 다 있을 정도로 엄청난 도서 수집가였으며 독서광이었다. 많은 책을 읽고 그것들이 매개가 되어 다시 책으로 저술해 민족과 백성을 이롭게 해 주고자 했던 그는 좋은 책을 많이 쓰는 것이 바로 덕을 쌓는 것이라고 믿었던 인물이었다.
 
현대인들의 독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인터넷 등의 발달로 책을 읽을 줄 알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읽지 않는, 이른바 ‘기능적 문맹’을 양산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기보다 TV를 보거나 유튜브, 컴퓨터 게임을 선호하는 등 활자보다 영상을 편하게 접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와 지식을 얻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 읽기의 장점이 점점 더 밀려나는 추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들의 연간 독서량이 2019년에는 7권이었고, 2021년에는 4.5권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최근 3년 사이에는 2.7권으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 이용은 10% 언저리에 불과하고, 평균 독서 시간도 10분 초반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인의 평균 독서 시간과 독서량이 해마다 줄고 있는 반면, 정보사회를 구가하는 선진국에서는 계속 독서량이 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된 책’이라는 관점은 정당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독서 능력보다 ‘정보기술 면허증’ 얻기를 우선시하는 건 분명 잘못인 것 같다. 능동적인 정보 추구, 수용, 인식과 창의적인 정보의 활용을 위한 전제가 바로 독서 능력이기 때문이다.
  ‘정열의 나라’로 알려진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책과 장미의 축제’가 펼쳐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결한 지성을 의미하는 책과 함께 숭고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를 선물하는 것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때가 되면 도시의 곳곳에서는 손에 책과 장미를 든 연인과 가족, 친지들이 쏟아져 나오개 마련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광장이나 공원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베풀어지고, 작가나 저자들이 직접 책을 가지고 나와 특별 판매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먼 나라 풍경이지만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논어(論語)』에도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學而時習之)’는 말이 나온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미래를 향한 비전을 갖게 된다. 새로운 느낌과 생각이 싹트고, 그 싹이 자라 이해와 판단의 성숙한 꽃을 피운다. 책 읽기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게 하며, 지식뿐 아니라 지혜를 얻게 해 준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인해 부자가 되고 부자는 책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진다”는 ‘고문진보’의 문구가 새삼 떠오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