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 사회가 거쳐온 변천의 모습이나 또는 그 기록을 말하며, 어떤 사물이나 인물·조직 따위가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취이다. 우리 국민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유산을 전통으로 지녀온 문화민족이다. 역사는 이미 흘러간 세월의 표상이지만 영원히 되풀이 되는 전례가 가르치는 철학이다. 그리고 온갖 인간의 생활에 역사가 있으며 역사가란 과거에 눈을 돌린 예언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람들로하여 미래를 판단케한다고 한다. 역사의 쓰임은 현시점과 그 임무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쓴, 미국의 극작가 밀러는, 인생의 항로는 바다와 같다. 사람은 왔다 가고, 밀물은 차고 빠진다. 이것이 전부라 했다. 역사는 명확해진 사실의 경험이다. 그러면서 역사를 읽는 동안에도 우리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세계의 역사는 세상의 일(사건)을 판단하는 법정과도 같다. 인간은 세계사의 중요한 담당자이며, 세계사는 인류운명의 집합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누구나 역사를 만들 수는 있지만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은 위인 뿐이라 한다. 또한 역사의 의무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거절)을 분명히 하는 데 있다. 사회학자 류달영 교수는, 역사는 소중한 인류의 체험이며 시대의 창조이다. 역사는 반드시 의미를 가져야 하며, 의미가 없는 것은 역사가 될 수 없고 나라의 자랑은 역사의 자랑이며, 역사의 자랑은 곧 인물의 자랑이다. 역사의 신(神)의 역사도, 자연의 역사도 아닌 인간의 역사로 만들어진 제 삼(3)자의 세계다. 흘러버린 시간도 아니고 괴어(잠재한)있는 시간으로, 미래를 향해 도리어 흘러내려 오는 그런 시간이다. 문화는 인지(인간의 지혜)가 깨어 세상이 열리고 생활이 보다 편리하게 되는 일로, 철학에서는 진리를 구하고 끊임없이 진보·향상하려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다. 문화의 본질이 종교인 것처럼 종교의 형태는 종교이며, 문화-그것은 인간의 운명 앞에서 부르짓는 함성이라 한다. 문화 국가란 근대적 관념에 불과하며 한쪽과 다른 한쪽, 서로 먹고 살고, 다른 쪽은 한쪽의 희생으로써 번영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와 사상은 절대로 다른 것이 아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며, 서로 연락을 지어 문화가 사상을 배양하고, 사상이 다시 문화를 키우는 인과적 관계를 이룬다. 또한 문화와 교양은 사람이 창조하는 그리고 극복하는 힘이 환경의 구속 속에서 얻은 최대의 조화라 한다. 예를 들면, 조선조 문화는 가난한 선비의 문화다.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이기는 하지만 거기는 안목(식견)이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지성과 교양의 표현이었다. 문화란 마음의 등불이요, 생명을 이끄는 광명이라 한다. 인간의 가치는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간에 결국 문화의 가치이다. 시인 조지훈의 ‘지조론’에 문화는 경작(농사)와 같이 자연을 소재와 배경으로 한 일종의 재생산으로 인간의 초극력이 환경의 제약 속에서 그에 순응하면서 반발하여 얻은 최대의 창조적 조화라 했다. 인류의 문화는 그 나라 역사의 그림자이다. 또한 각 나라의 문화는 역사의 덩어리인 열매요, 역사는 문화의 뿌리인 근원이다. 필자는 문화단체의 일원으로 문화와 역사에 관한 내력을 체험하면서 문화가 역사의 조건이며, 동시에 그 사물임을 여러번 학습해왔다. 예술문화가 영감이 아닌 끈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노력이라면, 역사는 자연과의 투쟁이며 명확한 경험으로 산출된다. 뿌리 없는 문화, 그것은 플랑크톤(미생물)의 문화라 한다. 대중 속에 침투되지 못하는, 그리고 생활근거와 결합되지 못하는, 또한 민족의 혈육 가운데 섞여서 동화되지 못하는 문화는 장식으로서의 문화이며 모방문화라 한다, 문화는 우리의 생활과 더불어 원대한 길을 걸으며 영구히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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