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6일은 민족과 국가의 수호 및 발전에 기여하고 애국애족한 열사들의 애국심과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치고 나라를 위해 희생된 모든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기 위한 법정공휴일이다. '충렬을 드러내는 날'이라는 뜻으로 1956년 4월 25일에 처음으로 ‘현충기념일'이라고 불리다가, 1982년부터 대통령령에 의해 ’현충일(顯忠日)‘로 불러오고 있다.   이날은 순국선열들과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며, 경사스러운 날이 아니므로 국경일이 아니다. 국가 입장에서 애도를 표하는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 그래서 국민 모두는 이날을 무심하게 보낼 수 없다. 귀중한 목숨을 나라를 위하여 바치는 충(忠)이 없었다면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나라는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선인들은 아동기의 자녀에게 『천자문(千字文)』이라는 고전에서 ’충즉진명(忠則盡命)이요 효당갈력(孝當竭力)이라‘고 가르쳐 왔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忠)이고 부모님을 섬김에 힘을 다하는 것이 효(孝)라고 충과 효를 구분하였다.   ’충(忠)‘은 자의(字義)에서 보면 ’중(中)‘과 ’심(心)‘이 결합 되어 속마음, 거짓 없는 성실한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라를 위하여 거짓 없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이라 하였다.   목숨을 바치려면 생을 마감한다는 중대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실적 삶인 생물적 생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사회적 생명의 영원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판단이 정립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충은 반드시 군주나 국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참되고 바른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충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충은 ’흥어신(興於身)하고, 저어가(著於家) 하며, 성어국(成於國)이라‘하여, 먼저 자신으로부터 일어나서 집안에 들어나고 나라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완성되는 것이므로 그 실행 면에 있어서 차원은 같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실천 이치는 같다고 하겠다. 그래서 충의 시초는 자신으로부터 추구되어야 하며 그 중간과정은 가정과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충의 종결은 국가에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석일(昔日)로부터 전해오는 충신열사의 희생적 충절사(忠節死)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그것은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위기로부터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며 서사어적(誓死禦賊)을 다짐하고 자신의 신명(身命)을 홍모(鴻毛)와 같이 가볍게 산화 시켜 보국의 충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신라 화랑 해론(奚論)은 “의(義) 없이 사는 것은 의(義)롭게 사는 것만 못하니, 그 의가 아니라면 비록 천금(千金)의 이(利)라 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으며, 화랑 소나(素那)는 “장부가 모름지기 병(兵)에 당하여 죽을 것이니, 어찌 병상에 누워 가인(家人)의 손에 죽으랴?” 하면서 확고한 사명감과 애국심을 보여준 것은 수많은 세월이 지났으나 영세불망 충의(忠義)로 전해오는 것이다.   신라 화랑들의 순국 정신은 충효를 바탕으로 한 애국정신의 표상(表象)이며, 오직 의(義)만을 위하여 사는 정의의 정신은 그대로 의병으로 연결되는 의병정신, 삼일독립정신, 학생의거정신 등의 기저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삼가 충의 영령(英靈)의 명복을 기원하며 돈수재배(頓首再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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