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다. 6월이 더위를 몰고 왔다. 산야가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물들었다. 신록이 너울을 펼치며 녹음이 짙어진다. 5월이 앳된 얼굴의 소년이라면 6월은 사춘기쯤 된다. 태양을 향해 반항하는 그 기세가 온 누리를 덮을 것 같다. 밤꽃도 흐드러지게 피면 독특한 향기로 벌,나비를 유혹할 것이다. 호국의 계절이다. 6월이 오면 멀리서 포성이 들리는 듯하다. 국내.외 호국의 영령들이 우크라이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북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에 놀라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국가의 첫째 책무는 안보(安保)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캐나다의 한 노신사가 현대자동차를 구매하려고 매장을 찾았다. 자신을 맞아주던 동양인 딜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혹시 한국인인가요?’물었다. ‘맞다’고 하자 ‘큰형이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였다.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를 찾지 못한 채 60년이 흘렀다.’ 이 말을 묵묵히 듣던 한국인 신상묵 딜러는 형님의 성함을 물었다. 그는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유엔군 전몰용사 리스트에서 ‘Roy Duglas Elliot’를 발견하였다. 사이트에 묘비사진이 올라와 있어 사진을 현상하여 액자에 넣었다. 차를 찾으러 온 노신사에게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노신사는 액자를 꼭 껴안더니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노신사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연신 되뇌었다. 이에 그는 ‘당신의 큰형님 덕분에 제가 여기 있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이 사연을 그가 페이스북에 올려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 정부도 이를 알게 되어 국가 보훈처에서 노신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감사함을 전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낯선 나라에서 자신을 희생한 용사들.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신상묵 딜러. 이들이 만들어 낸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6월이 오면 땅을 붉게 물들이며 장렬히 산화한 버찌를 볼 수 있다. 문득 논개가 생각난다. 진주성이 왜적에게 짓밟힐 때 기녀로서 적장을 유인하여 남강(南江)에 빠져 산화(散華)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변영로 시인이 쓴 ‘논개’에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는 시구는 압권(壓卷)이다. 산에 가다 벚나무에 달린 까만 버찌와 뽕나무에 달린 까만 오디를 발견하였다. 하도 반가워 입이 새까매지도록 따먹었다. 까만 초여름이다.문득 어릴 적 생각이 떠올라 시를 지었다. 영광스럽게도 2023년 지하철 詩로 선정되어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유리벽)에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간 게시된다. 따가운 태양에/아이들 얼굴이/까맣게 익어가고//오디를 먹는/아이들 입술이/새까맣다//까만 버찌/아이들 입안에/쪼르르 구르고//가위 바위 보 하며/하나 둘/아까시 잎을 딴다//아이들은/초여름과 노느라/해가 서산을 넘는 줄도/까맣게 모른다(까만 초여름 권오중) 또한 빨갛게 익은 산딸기도 만나 아이처럼 신이 났다. 사랑도 이렇게 곱게 익어갔으면 좋겠다. 산딸기를 따먹으며 ‘빨갛게 익어가네요’ 노래(6번째 자작곡)를 한바탕 불렀다. 날씨가 더워지면 산자락과 들을 하얗게 물들이며 위풍도 당당하게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이 있다. 그 꽃 모양이 마치 계란프라이 같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계란꽃이다. 개망초로 많이 불린다. 그러나 계란꽃이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꽃에도 귀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 꽃을 계란꽃이라 불러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계란꽃과 경쟁하듯 금계국이 산과 들을 노랗게 수놓고 있다. 바람이 불면 노란 평화의 깃발을 휘날리며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듯하다. 계란(鶏卵)꽃과 금계국(金鷄菊) 둘 다 닭띠이다. 그래서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이좋게 피나보다. 아름다운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참 보기 좋다. 모내기한 논에서는 모가 내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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