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요, 잊히면 좀 어때요진짜 시인이라면 구름에게 명령해요입금 좀 제때 하라고요집세가 없어요, 여보!제발 노을에게 부탁이라도 해봐요, 우리넷이서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 먹을 순 없잖아요달무리라도 덮고 실컨 울고 싶어요당신이야 장미녀, 모란녀, 매화녀끌어안고 행간 속에 들어 가면 그만이지만시인의 아내는 뭐예요그만, 그만,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허황한 그딴 소린 집어 치워요 제발!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이 시인 놈아! -김동원, `이 시인 놈아`   이 시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안타까운 시인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시인도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냉정한 현실, 일상 속의 가난한 시인 이야기다. 돈과 시는 제로섬 게임이다. 한쪽이 쌓이면 한쪽은 줄어든다. 자본주의의 현실은 시인에겐 불안과 공포를 주기마련이다.돈과 시!, 이것은 브레이크 없는 욕망의 질주와 같다. 화자는 시인의 아내다. 당장 집세가 없다고, 제발 `노을에게 라도 부탁해서` 집값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느냐는화자의 간절한 호소가 행간에 넘쳐난다. 네 식구가 `밤마다 보름달만 뜯어 먹고 살 수 없지 않느냐`고 `달무리라도 덮고 실컷 울고 싶다`고 낭만적인 은유로 시인의 가난을 호소한다. 이 부분의 은유가 시적으로 이 시의 재미난 부분이다. 시인도 밥 먹고 차 마시고 버스 타고 똥도 싸는…. 돈을 좋아하는 일상을 사는 현실인이다. 시인은 `장미 같은 여자 모란 같은 여자 매화 같은 여자`와 시의 행간 속에서 숨어 살면 그만이지만,`시인의 아내는 뭐예요`, `내일 바람이 송금한다는 허황한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제발 빈말이라도 돈 좀 줘 봐라, 이 시인놈아!` 하면서, 시인인 남편을 이 시인놈아! 라고 절규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시의 클라이막스다. 물신시대가 판을 치는 이 시대, 시 쓰는 행위는 과연 비현실적인 미친 짓일까? 시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언어예술이다. 김수영은 "모기소리 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게 시인"이라고 했다. 그렇다. 시인이여. 비록 모기 소리보다 작은 소리일지라도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찾아서 오늘도 도전하는 것이다. 백지 앞의 시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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