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게 되었을까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신발은 미국 오리건 주의 동굴에서 발견된 기원전 약 7~8천 년의 것으로 산쑥나무 껍질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신발을 신은 것은 분명 발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겠지요. 추운 북부 지역에 살던 무리는 발이 동상에 걸려서 상하는 것을 피하려고, 바닷가를 근거지로 하던 무리는 햇볕에 달구어져서 걸핏하면 화상을 입게 하던 뜨거운 모래 위를 자유롭게 걷기 위해서, 또 거친 가시밭이나 자갈길을 걸을 때 생기던 발의 상처를 막으려고 신발을 신게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발의 재료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껍질이나 풀 따위의 식물과 고기를 먹은 후 나오는 동물의 얇은 가죽과 털로 발을 감싸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신발은 발을 감싸는 용도를 넘어 신분을 드러내고 욕망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경제가 발전하고 기술이 혁신됨에 따라 해방 이후 대유행이던 고무신이 운동화로, 또 구두로 신발의 재료와 형태가 변화해 왔고 최근에 와서는 디자인과 기능성이 신발을 고르는 우선순위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하면서 걷기를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기능성 워킹화가 디자인까지 고려하여 다양한 신발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기능성 신발도 벗고 양말조차도 벗은 맨발로 맨땅의 촉감을 느끼며 걷는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늘어난다기보다 전국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게까지 되니 각 지자체들도 다투어 맨발걷기에 좋은 황톳길을 조성하고 여기에 더해 황톳길을 만들어 유료로 운영하는 영리 업체까지도 생겨났습니다. 경주시도 황성공원 안에 맨발걷기 길을 조성해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맨발걷기를 한 지인이 불면증을 극복하고 체중도 조절된다며 내게도 적극 권장하는 데 떠밀려 공원 내 맨발걷기 길을 걸어봤습니다. 정오 무렵의 숲속 울창한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길 주변의 싱그러운 맥문동 밭이 우선 일상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주는 데 더해 황토로 조성된 바닥이 발에 닿는 촉감도 나쁘지 않아서 두어 바퀴를 금방 돌았습니다.   맨발걷기가 ‘열풍’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건강을 증진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속적인 맨발걷기는 혈액 순환, 불면증, 뇌졸중,고혈압과 같은 중증질환 극복에 도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구와 몸을 직접 연결하는 ‘어싱(earthing)’ 곧 접지를 통해 몸 속 활성 산소를 줄여 염증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걷기는 자연 숲길의 질퍽한 땅과 그 위의 습기, 떨어진 나뭇잎들을 딛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맨발걷기의 효과라는 것도 꾸준한 걷기 운동이 가져온 결과이며 오히려 맨발걷기가 불러올 위험성에 비중을 더 두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특히 노년층이나 당뇨환자에게는 그것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더구나 겨울철의 차가운 땅은 발을 동상에 노출시키고 혹 외상이 생겨도 감각이 둔화된 발이 느끼지 못해 계속 걷다가 상처를 더 키우는 위험이 따를 수 있어 겨울철 실외 맨발걷기는 누구나 피할 것을 전문가들은 당부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이용하니 공원 내 황톳길 표면은 쉽게 거북이등처럼 갈라지고 파손된 곳도 많이 생겨납니다. 걷기의 목표를 자신의 건강에만 두면 딛고 있는 땅의 고통은 보이지 않습니다. 발을 보호하려고 신던 신발을 벗어 던지고 걷는 행위를 ‘어싱’이라고 이름 붙인 데는 생태주의의 영향도 분명히 작용할 것입니다. 벗은 발을 땅에 직접 디디면서 땅과 인간 사이 음양의 기운이 적절히 조화되고 몸의 독소를 맨땅이 흡수한다는 주장에는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태주의적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결국 맨발걷기도 단순히 개인 건강의 차원을 넘어 지구와 인간이 직접 접촉함으로써 현재 지구 환경이 직면한 여러 위기 상황을 인간이 깊이 공감하고 자연을 대하는 인간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질 것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인류가 직면한 위기 상황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타개할 합일점으로 이끌어 갈 효과도 이끌어 내게 되겠지요. 월든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살며 사색하고 글을 썼던 19세기 미국의 대표적 생태주의자 데이비드 헨리 소로의 문장을 음미하며 걷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 이 시대의 문제점은 목적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수단의 개선만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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