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주예총예술제에 취재차 참석했다. 예의 그렇듯, 경주시장에 이어 경주시의회의장, 경주예총회장 등의 인사말 서두에서는 재차, 삼차 이날 참석한 이른바 ‘VIP’ 명단을 한참 되뇌인 이후, 본론적 인사말을 전했다.
  참석한 원로 예술인을 비롯한 예술인들과 시민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도토리 키 재기’ 식 내빈 소개순서에 의한 그날의 VIP를 목도해야만 했다. 관행처럼 자리 잡은 허례허식은 여전했다. 
 
이날의 주인공은 경주예술인과 예술을 향유해 온 시민들이었음에도 ‘높은 사람을 모시는’ 격식이 치러진 한참 후에야 진행된 연주와 전시해설 등의 프로그램이 그나마 행사 본래의 취지를 빛냈다.
  문화부 기자로서 취재 현장에서 내빈 소개와 인사말, 다수의 축사 등이 행사 시간의 절반을 차지해 주객이 전도된 행사를 수도 없이 경험한다. 굳이 지역 정서상, 혹은 예우상 소개를 해야 한다면 내빈 소개는 1회로 정해야 한다.
  현행 경주시 행사 의전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경직된 채 여전히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주는 특히 전국 각지의 내국인과 외국인이 많이 찾는 도시다. 굵직한 행사나 축제에서 얼굴도 모르는 ‘VIP’들의 이름과 직위 소개는 행사의 프로그램에 이끌려 참여한 그들에겐 관심 밖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구태한 답습 의전을 보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경주는 특히 의전의 최소화가 절실하다.
 
그러나 경주시의 모든 현장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경주시에도 다소 파격적인 의전을 시행하거나 앞장서서 간소화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여러 지자체처럼 개별소개는 없애고 상황에 따라 자막이나 영상메세지 등을 통해 간단히 소개하고 축사는 꼭 필요한 경우, 두 명 이내로 제약하기도 한다. 매년 열리는 신라문화제를 비롯, 일부 행사장에선 의전을 과감히 축소하는 시도를 통해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주 시민이 주로 참석하는 행사에선 의전의 구태가 당연시되고 있다. 심지어 본인의 소개가 끝나면 적당한 시간에 눈치껏 우르르 행사장을 떠나 버린다. 의전이 최소화되면 이런 이들은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실소를 금치 못할 대목이다. 
  언제까지 이런 낡아빠진 관행을 지속해야 하는가. 본래의 메인 프로그램을 기다리던 참석자들은 김빠진 맥주처럼 기다리다 지치기 일쑤고 볼멘 소리를 여기저기서 터뜨린다.
  의전(儀典)에 대해 정부의전편람에서는 ‘예를 갖춰 베푸는 각종 행사 등에서 행해지는 예법으로 사람 간 관계를 평화스럽게 하는 기준과 절차’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편하고 행복한 행사라고 생각할까. 주최자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을 존중하는 행사로 진행하는 것일가. 주요 내빈을 위한 의전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지...,심지어 내빈 좌석배정 및 소개순서로 혼선을 빚어, 참석한 시민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내빈 중심의 좌석배치 등으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행사 주최측도 ‘주요 내빈을 모셔야만 행사의 격이 올라간다’는 편견으로 행사의 본질과 정체성을 망각하고 그 순서를 우선시하기도 한다.
  APEC 경주 유치가 가시화된 지금, 앞으로 훨씬 많아질 크고 작은 행사를 앞두고 또 얼마나 고답적인 의전이 반복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플 정도다. 구태한 의전은 과감히 줄이고 행사 본래의 취지에 맞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더욱 보강하고 시간 배정도 늘여야 하는데 말이다.
  경주시도 행사의전을 간소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윗선’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현장에서는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쳐지지 않는 병폐 중 하나로,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니 결국 가장 윗선인 경주시장부터 의전 간소화와 불필요한 의전의 과감한 생략에 나서지 않으면 현장에서의 시행은 어려울 것 같다.
  기존 단체장 중심에서 참여자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하고 내빈소개나 인사말도 최소화해야 한다. 문화예술행사와 축제의 경우, 축사 등에 할애했던 시간을 다양한 볼거리 제공으로 대체하는 등 얼마든지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쓸 콘텐츠는 다양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