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귀 기울인다는 것무엇보다 내가 경험했던 것 중 가장 큰 도움은, 바로 `나의 기록`이었고 그것이 주는 작은 성과였다. 9편째를 쓰고 있을 때였나,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잇싸, 우렁각시서방 님 글 중)어쩌다 눈팅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좋은 글을 읽었다. 세 번의 은둔 생활을 고백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전하는 글이다. 아찔했던 4년 은둔 생활 중 고립 방지를 위해 글쓴이가 선택한 방법은 기록 즉 글쓰기였다. 고립의 다른 말은 “방치”다. 방치는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는 동시에 자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였다. 글쓰기 속에서 “나의 쓸모를 떠올리고 나의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작은 성공`을 느낀다.”그렇다 글쓰기는 나 자신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건네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나와 다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이면서, 나날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성공”일 것이다.   글쓰기는 나의 말을 들으며 나의 시간을 언어라는 육체에 기록하는 행위다. 시간에 새겨진 사소한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삶의 한순간에 집중하며 주어진 나의 시간을 소중히 다룰 수 있게 된다.글은 나에게 전하는 언어-육체보통 입으로 전하는 것은 나의 말이고 귀로 듣는 것은 타인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꼭 타인의 말만 들어야 할까.   타인의 말만큼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은 나의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을 가장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모든 글은 나의 말을 들어달라고 타인에게 요청하는 행위이면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땀 한땀 기록한 결과물이다.내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말하면서 그 말을 귀로 듣는 것이다. 입 외에 귀라는 신체 기관을 사용해 내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려는 행위다. 나는 이 역시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일종이라고 부르고 싶다.    메타인지는 자기 생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 생각 인지만이 아니다. 마음과 무의식이 전하는 무정형의 말을 알아듣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말을 들을 때 내가 무엇을 느끼며 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 것을 남에게 쉽게 전할 수도 있다. 타인과 소통이 잘되는 사람은 자신과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다.새 바지 입고 팔딱팔딱!며칠 전 한 후배가 맞는 바지가 없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오랫동안 자기 속에 고립되어 있다 세상으로 나오려 노력하는 그는 몸에 맞지 않는 바지보다 세상에 맞지 않는 자신을 더 두려워하는 듯했다. 비지가 안 맞아 입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과도 안 맞아 살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후배를 떠올리며 시 한 편을 썼다. (참고로 나는 30년 넘게 시를 쓰며 가르쳤고 얼마 전엔 등단도 했다.)시 쓰게 된 계기는 후배였지만 실은 나에 들려주고픈 얘기다. 세상이 맞지 않을까 봐 그래서 낙오되고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내 마음의 얘기다. 잘 맞는 새 바지를 입고 세상을 살아가고픈 나와 후배에게 시를 보낸다. 이처럼 나에게 시-글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매개, 나의 말을 전하는 언어-육체다. 여러분은 어떤가? 어떤 자신을 글에 담고 싶은가? 어떤 말을 자신에게 들려주고 또 듣고 싶은가? 오늘은 어떤 얘기를 자신과 세상 속에 풀어놓고 싶은가?새 바지오래전 사둔바지를 꺼내 입었다허벅지가 꽉 낀다바지가 작아졌구나아니 내가 큰 것이다큰 만큼 세상이작아진 것이다새 바지를 입혀주자커진 나를 담고더 넓은 세상을 담자발정난 심장이 되어팔딱팔딱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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