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삶의 첫 이변 사건기상이변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계절이 앞당겨 오거나 와야 할 계절이 오지 않는다. 봄날에 폭설이 내리거나 한겨울에 여름꽃이 피기도 한다. 이변이란 표현엔 돌연변이처럼 사람 힘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 깔려 있다.개별 사람에게 가장 큰 이변은 첫사랑일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삶의 이변 사건. 부모 아닌 타인의 몸/마음과 만나는 최초의 감정 사건.   예고 없이 이유 없이 들이닥쳐 혼돈에 빠뜨리는 감정의 폭설 속에서 우리는 삶이 사랑의 리듬이자 이변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이효* 시인은 첫사랑을 봄날 폭설처럼 밀려오는 벚꽃으로 표현했다.벚꽃봄의 폭설을 보아라아름답다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해내 입술이 벌어져 꽃이 되었다그냥 울어 버릴까하얗게 뿌려 놓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하얀 포말로 밀려오는 꽃이여마지막 입맞춤에 독이 있다 하여도나 그대와 함께 와르르 무너지리울타리 없는 봄날에벚꽃이 “봄의 폭설”처럼 예고 없이 시차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다. 봄에 내리는 폭설은 기상이변에 가깝다. 늦게 온 것일까 일찍 온 것일까. 어쩌면 제때 도착한 것인지도 모른다.쏟아져 내리는 벚꽃을 보며 “아름답다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한 입술이 “벌어져 꽃이 되었다.” 꽃은 사랑이라는 말이 물질화된 존재, 사랑을 발화하는 입술이 개화한 순간이다. 꽃 속에는 차마 뱉지 못한, 그대를 향한 아름다운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대와 함께 와르르 무너지리시인의 말처럼 첫사랑은 독이 든 사랑이다. 안온한 삶에 균열을 내고 굳은 감정의 울타리를 부수는 독 같은 사랑이다. 시인은 “마지막 입맞춤에 독이 있다 하여도”, 그대와 “와르르 무너지”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입맞춤이 될지언정 사랑이라는 독을 들이마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너지리”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예전엔 못 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다는 것. 이 시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실패한 첫사랑에 관한 얘기다. 미련과 후회로 가득한 “그리움의 연서”.   그리하여 마지막 입맞춤이라 해도, 끝이 보이는 사랑이라 해도 용기 내어 해보겠다는 다짐의 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후회과 실패를 경험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는 진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첫사랑은 후회와 실패의 다른 표현이다. 모든 사랑은 처음 사랑첫사랑과 비슷한 표현으로 처음 사랑이 있다. 나는 첫사랑보다 처음 사랑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앞서 말했듯 첫사랑은 생애 처음 경험하는 사랑이다.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일무이라는 거대한 의미가 부여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사랑이든 그 누군가와는 처음 하는 사랑이 아닐까. 처음 알고 처음 만나고 처음 만지는 사랑. 처음 깨지고 다시 조각을 이어 붙이는 사랑. 첫사랑이든 끝 사랑이든 모두가 처음인 사랑이다.두 번째 첫사랑, 또 하나의 처음 사랑을 떠나보내며 아래 시를 올려본다. 몇 달 전 시를 썼을 때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리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의 온도”는 폭설(暴泄)의 온도이자 폭설(暴舌)의 온도다. 봄날 폭설에 여전히 속수무책인 나와 당신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마음의 온도마음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지만수증기에서 얼음으로 변해간다망치로도 다이아몬드로도 쪼갤 수 없고헤쳐 나올 수도 없는 얼음벽 속에서뜨겁게 얼어붙고 차갑게 끓어 넘친다영원히 지속된다면 질식할 것이다절규마저 얼어 허공에서 번뜩거릴 것이다어린 새가 잃어버린 날개처럼깃털 한 점 없이 추락하고 말 것이다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얼음이 될 줄 알면서도 불타기를 바라는 일바위가 될 줄 알면서도 흐르기를 바라는 일*이효: 시인. 시집 《당신의 숨 한번》(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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