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 산, 나무, 나무, 나무’   무슨 선문답이냐고요? 1973년부터 시작된 치산(治山) 정책의 캐치프레이즈였습니다. 구체적인 묘사가 담긴 문장이 아닌데도 전달력은 전혀 그에 못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느낌이지만 이 표어를 보면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푸른 산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하지만 이 표어가 내걸리던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산림은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붉은 민둥산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남은 60년대 헐벗은 우리나라 산의 항공사진을 요즘 젊은이들이 본다면 우리 강산의 모습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던 우리 산이 어떻게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을까요?   자고로 우리나라는 산이 우거져서 호랑이같은 맹수도 몸을 숨겨 살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우리의 아름드리나무들을 잘라 목재로, 전쟁물자로 수도 없이 실어내었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산을 비롯한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무를 땔감으로 난방과 취사를 하던 과거 우리의 주생활도 벌거숭이산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흥해읍 오도리 해안가에 ‘사방기념공원’이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영일만 일대에 연인원 360만 명이 투입된 전국 최대 규모의 사방산업과 산림녹화사업으로 헐벗고 황폐한 영일만 지역을 울창한 산림으로 변모시킨 일을 기념하여 조성한 공원입니다. 공원 안 야외 곳곳에 당시에 사용된 바지게, 소달구지, 삼륜차 등이 전시돼 있고 오로영일만뿐 지 사람의 힘으로 그 험한 작업을 하던 모습을 실제 사람 크기의 조형물로 조성해 두었습니다.     당시 헬기로 영일만 위를 지나던 박정희 대통령이 벌건 민둥산들을 보고 놀라 영일만 일대는 물론 전국적으로 황폐한 국토를 녹화하려는 치산녹화산업을 우리나라 근대화의 중심사업으로 추진하여 불과 5년여 만에 푸른 산을 조성하는 대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처럼 기계화된 작업이 아니라 국민들이 온전히 맨손과 맨몸으로 이뤄낸 업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짧은 시간에 푸른 산 재건을 성공한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였기에 CNN이 취재하여 보도했고 그 보도를 본 나라들이 성공 사례를 배우려고 시찰단이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그때 제정되었던 식목일에 학교에서 단체로 나무를 심으러 가던 기억이 납니다. 공휴일임에도 다같이 학교에 모여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가 묘목 한 그루씩 받아 심은 뒤 주전자로 물을 떠서 충분히 주고 내려와서야 집에 가서 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어 자란 소나무에 송충이가 창궐하면 나무젓가락과 깡통 하나씩을 가지고 뒷산에 송충이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우리가 잡아온 송충이를 불 속에 던졌습니다. 그러던 식목일이 어느덧 나무를 심기보다 그냥 하루 쉬는 날이 되어버렸더군요. 굳이 그날 단체로 나무를 심지 않아도 될 만큼 이제 우리나라 산이 우거져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며칠 간 곳곳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가 많이 생겼다는 기사가 연일 보도됩니다. 고온다습한 온대몬순기후대인 우리나라는 해마다 장마철이면 폭우로 큰 피해를 입습니다. 작년에도 장마철 폭우로 제방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나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나고 논밭이 유실되어 큰 재산상의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복구가 더뎌져서 작년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데 며칠 전에 또 큰 비가 내려서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작년 산사태로 토사가 쓸려 내려와 푸른 색 사이로 가르마처럼 황토색 흔적이 선명한 고향 뒷산을 볼 때마다 나무와 숲의 힘이 지닌 방어력을 실감합니다. 어느 나라보다 앞서 갔던 치산녹화의 혜택임을 실감합니다.   산림녹지는 산사태 방지, 온실가스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열섬 현상 완화, 산림 휴양과 같은 공익적 가치를 지닙니다. 일례로 전형적 분지 지형인 대구는 여름이면 도시의 열기가 빠져나갈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늘 손꼽혔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 당국은 긴 기간을 꾸준하게 가로수를 심고 곳곳에 소공원과 녹지를 조성하여 여름의 열섬 현상을 해결해 보고자 했습니다. 아직 ‘대프리카’란 별명은 여전하지만 근년 들어서는 더위의 명성을 다른 지역에 양보하는 미덕(?)도 자주 보입니다. 나무심기의 놀라운 힘이라고 합니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숲에서 하늘로 죽죽 벋은 눈부신 흰 둥치와 작은 바람에도 와수수 흔들리던 녹색의 나뭇잎들의 교향곡은 휴양의 범위를 넘어서 정신적 위로와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일 폭우 특보 안내문자가 날아오지만 이번 주를 고비로 장마가 잦아든다합니다. 장마 후의 맹렬한 무더위를 상상하니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산림휴양림 속 통나무집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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