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땐 텔레비전을 시청하기가 매우 거북하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사람 모습과 그 내용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어서다. 하긴 이런 불미스런 소식들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련만 너무 자주 이런 내용들과 접하다보니 괜스레 멀쩡한 사람 정신마저 좀 먹을 듯하다. 이는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 일 것이다.   청렴한 세태에 사노라면 누구나 마음이 올곧게 정립되고 정화된다. 인간 욕심의 끝은 어디 일까?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잖은가. 또한 몸 성하겠다 먹고 살만큼 재물도 있으면 안분자족安分自足 할 일이지 그 무엇을 더 넘본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에게 꼭 권할 책이 있으니 송광룡이 지은 『역사에 지고 삶에 이긴 사람들』이 그 책이다.    이 책엔 양산보와 담양의 소쇄원, 김인후와 장성의 필암 서원, 정약용과 강진의 다산 초당 등 역사 그늘에 갇혀 유배당하고 은둔했던 장소와 그 시대 인물들을 저자가 가슴으로 만나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 땅 끝 마을 해남 대흥사에서 저자가 만난 초의선사가 지녔던 다산일여 사상은 온갖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 심성을 새삼 정갈하게 비질해 주었다. 또한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짓는다 해도 불과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라는 옛 글에선 선승의 맑고 청량한 깨달음이 필자 가슴을 관통하고도 남음 있었다.   자연은 순리를 따른다. 하늘을 높이 나는 새들은 자신의 둥지를 짓는 일에 오로지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였다. 우리처럼 넓은 땅, 좋은 집을 욕심내지 않는다. 욕망은 어느 면으론 인류 발전에 기여한 면도 없잖아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불행의 덫을 피할 길 없는 게 인간사 아닌가. 하여 일찍이 선인들이나 우리 조상들은 삶을 살며 가장 경계할 일이 욕심임을 알아챘었다.   그런 연유로 가슴 속에 헛된 탐욕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것을 절제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어떤가. 요즘 명품 값d이 부쩍 올랐다고 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명품들은 외국 회사 제품으로써 고가의 상품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소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핸드백, 장신구, 외국 유명 상표 옷 등 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란다.    한 때는 “ 소비가 미덕이다.” 라는 말이 항간에 회자된 적 있다. 세계적 경제 불황 여파로 인하여 우리 경제가 도통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즈음이다. 몇 백 만원 심지어 몇 천 만원을 예사로이 호가하는 핸드백, 모피, 장신구 등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무리를 해서 그것도 겉치레에 치중하느라 카드빚까지 동원해 그것을 구입하는 일을 주위에서 종종 보아왔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만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그릇된 시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외모지상주의에 맞물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욕도 한 몫 한다고나 할까.   우리 조상들은 세 끼 죽을 먹고 살아도 자신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은 행하지 않았다. 즉 분수를 알았던 것이다. 행여 가진 게 없어 빈주먹으로 다 쓰러지는 초막에 살지언정 남의 것을 넘보는 일은 사람 도리가 아니라고 여겼다. 이런 삶의 철학을 초의선사도 직접 실천하여 욕심을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청빈한 삶을 당연히 여겼을 법 하다. 그는 가난하여 풀잎으로 벌거숭이를 가리는 삶일지라도 그게 결코 부끄럽지 않았음을 이렇게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고 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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