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음악계의 거장으로 경주의 자랑스런 음악인이자 아시아인이 존경하는 음악인이었던 완송(完松) 안종배 선생(1932~2024)이 27일 타계했다. 향년 92세. 1988년 대통령 표창장,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음악상 등을 수훈한 지역 음악계의 1세대 원로인 안종배 선생은 격조가 남달랐다. 선생은 음악의 본질에 몰두하고 음악을 깊이 사랑했고 자신의 평생을 관통하는 신념과 음악철학은 확고했으며 ‘누구보다 경주를 아낀다’고 자신했다.사회적인 입지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정형화된 과정을 답습하지 않았던 음악계의 원로로서 ‘단지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생을 음악에 관련된 일만 추구했다.경주교향악단의 시립화를 염원했고 경주교향악단 명예지휘자였던 선생은 ‘교향악단의 활동은 그 지역 문화의 바로미터’라며 경주가 가진 토양 자체가 음악적 자질을 키울 수 있었던 배양토였다고 했다.선생은 1932년 경주시 노동리에서 출생하고 자랐다. 경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과대학 예술학부 기악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모교인 경주중고등학교에 서 3년간 1957년까지 음악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대구시와 마산시의 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는 등 두 도시의 교향악단을 만든 음악인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일로 평생을 살아왔다.경남대학교에서 1997년 정년퇴직한 후 다시 경주로 돌아와 특히 2000년부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및 음악 감독을 맡아 20회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지역사회 클래식 음악의 대부로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선생은 평소 “포항, 대구, 김천시도 시립교향악단이 있는데 경주가 없다는 것은 문화도시로서 문화적 품격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개탄했다.선생의 공적은 나열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1953년 경주 최초로 경주합창단을 만들었으며 1963년 전국공모에서 ‘경북도민의노래’를 작곡해 지금까지 60여 년간 불려지고 있다. 또 아시아의 대표적인 음악인으로서 미국의 대표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창립한 일본의 홋카이도 PMF(태평양음악제)에 ‘아시아음악교육지도자’로 추대되기도 했다.또 MBC, KBS 방송에 출연하면서 음악해설을 통한 대중화에 주력하기도 했다.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의 나고야 예술대학의 명예교수로 활동했고 경주교향악단 음악감독, 명예지휘자였으며 아시아 21세기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한국대표, 대구 오페라하우스 자문위원, 한국 관악협회 자문위원 등의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김상용 경주예총회장은 '경주의 음악예술인 1세대 안종배 선생은 백과사전보다 더 해박한 음악적 지식을 가진 분'이라고 말하면서 "늘 아버지같이 여긴 분이었다. 오십여 년 제자로서 아버지를 여읜 것처럼 슬프다. 선생은 고향인 경주로 돌아오셔서 경주교향악단 지휘를 통해 경주음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셨고 특히 관현악분야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선생을 뜻을 받들어 지역의 서양음악 발전과 교향악운동의 정신을 잘 계승해 서양음악 저변확대에 더욱 노력할것을 다짐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종신토록 진력한 안종배 선생. 그는 빼어난 안목과 탁월한 감수성을 지닌 소유자였다. 음악을 통한 깊은 통찰력을 젊은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던 음악계의 소중한 원로가 큰 별이 돼 경주 하늘에 다시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