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결혼할 의향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정치사회 이념 갈등이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끝없이 다원화하는 이 21세기적 질서 아래 사회통합을 일방적으로 호명하고 강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이념 갈등에 관한 조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통합 실태조사 및 대응방안(X)'에서 응답자의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변했다.
청년은 51.8%가, 중장년은 56.6%가, 노년은 68.6%가 그렇다고 응답한 세대별 차이도 주목할 만했다. 더하여, 응답자의 33.0%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지인과의 술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71.4%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할 의향이 없다고 답변했다. 조사 결과는 이념 갈등이 이제 일상 및 사회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동기와 민주화 선언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이념 구도의 새로운 경향은 먼저 이념 갈등이 진영에서 개인으로 확산돼 왔다. '진영적 사유의 일상화'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다.
앞서 인용한 연애와 결혼에 미치는 이념 갈등은 단적인 사례다. 연애, 결혼과 같은 친밀성에 이념, 가치가 중시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라는 '두 국민'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침입하고 지배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적잖이 쓸쓸하다. 아직 중도가 절반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왜 국민 다수는 이념 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걸까.
  이념 갈등은 '복합 갈등'이다. 복합 갈등이란 가치 갈등이자 이익 갈등이라는 의미다. 이념은 가치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 '드러난 가치'는 가치대로 맞서고, '숨겨진 이익'은 이익대로 대결하는 게 이념 갈등이다.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할 때 분노를 느끼고, 그 정체성에 대한 인정 욕구가 분출한다. 7080세대 다수는 가난에서 벗어난 산업화에 자신의 젊음을 바쳤다고 생각하는 반면, 4050 세대 다수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한 민주화에 자신의 청춘이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삶에 각인된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적대적 이념 갈등의 악순환으로 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념 갈등의 완화 방안은 없을까? 이념 논쟁에서 상대방에 최대한 관용의 태도가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적대와 증오를 넘어선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과 정부를 포함한 정치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