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일찍 도착하고 그만큼 빨리 끝난다. 시적 재능도 다르지 않다. 단련된 노동 근육의 힘으로 오래전부터 청춘의 시를 써온 시인이 있다. 바로 김준한. 19세 때부터 25년 동안 시를 썼고 올해 6월 등단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언어로 청춘의 시적 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나는 종이 시집이든 온라인이든 좋은 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읽는다. 2주 전 문인 단톡방에 올라온 시 <유실물>. 열차 유실물센터에 버려진 ‘외 젓가락’ 얘기다. 잃어버린 것도 버림받은 것도 아닌데 유실물이 된 청춘의 얘기. 이름도 모르는 시인의 시를 보자마자 내가 잊어버린 청춘의 언어와 재회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공개된 적 없는 시들을 남들보다 먼저 맛보는 행운을 누리는 중이다. 당신과 행운을 함께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울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얼어붙었다“   세상의 모든 어둠은 철근 사이에 얽혔다 / (,,,) / 지난 세월보다 길어진 하루 더듬어 / 바닥에서 멀어지고 싶으나 끝내 닿지 못한 고층, / 3층이란 소박한 높이가 그토록 오르기 힘든 꿈이었을까 (,,,)/ 세상은 추워서가 아니라 / 울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얼어붙었다 / 수도꼭지가 잠겨 흘려보낼 수 없는 슬픔 / 얼어붙어 눈물샘이 멈췄다/ 주검을 들것에 뉘어 방을 나오자 / 속이 터져 뜨거워진 수도꼭지가 / 홀로 남아 흐느낀다 (<철근공> 중) 시인은 자신을 "몰탈 콘크리트 치는 시인"으로 소개한다. 온 육체로 노동하는 감각을 시로 옮기는 사람. <철근공>은 철근공의 죽음을 그린 시다. 철근공은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가공 조립하는 일을 한다. 건물을 지탱하는 재료인 철근은 "벌겋게 녹슨 생의 뼈대"다. 그에게 "세상의 모든 어둠"은 철근 사이에 얽혀있다.   철근처럼 밤은 “가로세로 교차하며 온몸을 결속”해 그의 죽음을 재촉한다. 철근공이 캄캄한 철근-삶에 갇혀 숨 멈추는 비극. “3층이란 소박한 높이”는 그토록 오르기 힘든 꿈이었을까. 3층은 철근공이 머무는 여인숙 방 층수다. 아무리 올라가도 바닥인 삶을 은유한다. 그는 바닥에서 냉기 어린 술병과 "허공에 끄적인 고단한 문장"을 남기고 주검이 되었다.   시인은 세상은 추워서가 아니라 "울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얼어붙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울지 않는 건 혼자 울어봐야 어쩌지 못하는 세상 때문이 아닐까. 죽은 철근공도 울지도 못하고 악몽 보는 가위눌림에 시달리다 세상 밖으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을 위해 울어 주는 건 "속이 터져 뜨거워진 수도꼭지"뿐.   얼어붙은 세상에서 철근공의 주검은 "동파된 사건의 유서"가 되었다. 생전 그의 삶은 비루한 삶이 아닌 불운한 삶이다. 세상에 깊이 박히고 싶었으나 비켜 맞기만 했던 굽은 못 같은 삶이다. "구부러진 과오“(<굽은 못>)로 가득한 아픈 청춘. 아파야 청춘이라지만 시인의 청춘은 처음부터 아프기만 했다.실패한 사랑의 기록   그의 시는 이처럼 불운한 노동의 삶에 관한 얘기다. 실패한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청춘은 노동도 하지만 사랑도 많이 한다. 앞뒤 재지 않는 사랑을 하느라 언제나 뜨겁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닿"는 일은 "태양열을 온몸에 흡수하며 바닥없는 어둠을 항해"(<우주를 건너는 일>)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우주를 건너는 일. 우주의 중심으로 무방비하게 던져져 바닥없는 어둠을 확인하는 일.   하지만 그 일마저 시인에겐 "허락되지 않은 알맹이”와도 같았다. 가장 아름다운 일이 누군가에겐 가장 슬픔임을 깨닫는 건 슬픈 일이다. 시인은 아름답고 “볼록한 그녀의 모성”(<붉은 방>)을 원하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모성의 결핍... 사랑의 실패도 그 때문일까. 누구에게도 또박또박 읽어줄 수 없는 "잘못된 띄어쓰기"(<오타>). 오타로 점철된 삶에서 사랑도 서로에게 오자로 남는다.국자 속에 빠진 아이들의 눈빛이 녹고 있다. / (...) / 꼬마들아 무슨 모양 찍어줄까? / 별요, 네모요, 세모요, 동그라미요. /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꿈을 이야기하고 / 한 아이는 넓게 편 달고나가 굳기 전에 엄마를 찍는다. (...) 오빠야, 집에 가자 엄마 왔을지도 모른다. 저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 오늘도 오려내지 못한 오빠의 깨진 부스러기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달고나를 아시나요> 중)결핍의 근원을 짐작해볼 수 있는 시다. 달고나 파는 아저씨가 동네에 온다. 달고나는 설탕과 베이킹소다를 국자에 녹여 만드는 과자. 찍힌 문양 그대로 오리는 것으로 뽑기, 띠기라고도 부른다. “무슨 모양을 찍어줄까?”라는 묻는 아저씨에게 저마다 다른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한 아이는 엄마를 찍으며 엄마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오늘도 오려내지 못한 오빠의 깨진 부스러기". 엄마는 오지 않고 시간은 국자 바닥처럼 까맣게 타들어만 간다. 아이와 오빠는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매일 달고나 뽑기를 할 것이다. 이렇게 아이-시인은 모성에 의지하지 못하는 삶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실패한 사랑의 기록 아래에는 어릴 적 상흔으로 남은 모성의 결핍이 자리한다.시, 세상 향해 터뜨리는 종기   며칠 전 처음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시인은 대상 받는다며 “종기를 터뜨리러 갑니다”라고 표현했다. 남발되는 상 때문에 대상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세상이다. 상을 받았든 안 받았든 시인 김준한은 나에겐 변함없이 좋은 시인이다. 그의 시 앞에서는 등단 시기, 수상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종기는 “세상을 향해/다 뱉지 못하고 삼킨 언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붉어"(<종기>)지는 종기는 터뜨리지 않으면 안에서 곪아버린다. 그의 시는 밖으로 터뜨리고 싶었으나 오랫동안 속으로 삼켜지기만 한 종기였을 것이다. 나는 종기 터뜨리기를, 25년 내내 뜨거웠던 청춘의 목소리를 세상에 당당히 발화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한편으로 종기는 시인으로서의 그를 거부한 매정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시는 "지난 페이지가 된 청춘"이 아니다. 오래 시를 쓰는 동안 언제나 청춘이었다. 그의 시를 읽는 나도, 읽을 당신도 청춘이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의 페이지 역시 뜨겁고 치열한 청춘의 언어로 가득 찰 거라 믿는다. 세상-종기를 터뜨리며 세상-우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명이 아닌 김준한이란 본명으로.   시를 읽는 동안 나의 청춘을 돌아보는 시를 써보았다. 나 자신을 봄에 입은 무거운 외투로 표현한 시다. 내 눈엔 어둡게 빛나는 <5월의 외투>를 살짝 내려놓는다.5월에도 겨울 외투를 입고 다녔다 / 실밥이 터졌어도 입이 무거운 외투 / 날지도 못하는 거위 깃털이 날렸다/ 털신을 신고 방한 마스크도 꼈다 / 좀만 숨 쉬어도 축축해지는 마스크 / 숨은 쉬는 게 아니야 멈추는 거야 / 달콤한 목소리에 손목을 그었다/ 5월은 언제나 1월 다음에 오고 / 무거운 외투는 더 무거워졌다 / 외투에 나를 구겨 넣고 눈만 껌벅였다/ 계절이 일찍 온 게 아니라 / 내가 다른 행성에 불시착했음을 / 외투를 잃어버리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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