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인이, 그것도 쟁쟁한 윗세대 선배들을 제치고 쉰셋의 젊은 작가 한강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랴! 숨이 컥컥, 막힐 정도로 예고 없이 찾아온 경사에 많은 이들이 잠을 설치고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러나 그 충격은 역설적으로 한강의 문학이 내재한 힘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반증도 된다.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근원에는 ‘영혜’가 어린 시절 목격한 개의 도살 장면이 있다. 오토바이 뒤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동네를 달릴 때,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핏물이 고인 눈”의 개를 본 경험이 그녀를 채식주의자에서, 몽고반점을 가진 매혹적인 존재로(‘몽고반점’), 마침내 스스로를 ‘나무’라고 상상하며 파멸하는 단계(‘나무 불꽃’)까지 이르게 한다.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이런 신체반응 묘사를 통해 강렬한 개성을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확대했기에 그녀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제기하는 ‘어떻게 타자의 고통에 가닿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면 우리 현대사의 굴곡으로 확장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다룬 선배 작가들이 왜 없었겠는가? 이는 타국의 작가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나 선배 작가들이나 다른 세계권의 작가들이 고난의 역사를 굵직한 시각에서 조망했다면 한강은 같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인간 내면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더욱 깊이 천착함은 물론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으로 나아가 치유하는 미학까지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운동을 각각 여섯 서술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설이다. 여기에는 열다섯 동호의 동갑내기인 ‘죽은 정대의 영혼’까지 포함된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79쪽)와 같은 개인의 고통과 내면에 몰두하는 문장으로 형상화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다. 잡지사 기자이자 작가로 나오는 ‘경하’에게 닥치는 발작적으로 찾아오는 고질적인 두통과, 삼 분에 한 번씩 알콜솜을 적신 바늘로 집게손가락 마디에 찔러야 하는 ‘인선’의 고통은 제주 4·3으로 죽은 자들의 고통을 당기는 촉매가 된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한 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쪽) 확실히 한강은 글쓰기가 불가피한 고통을 무릅쓰고 끔찍한 고통의 한가운데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걸 문장으로 보여준 작가다.   이런 미학이 2005 이상문학상(‘몽고반점’)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문학상 수상은 물론, 2017 이태리 밀라파르테문학상 (‘소년이 온다’), 2018 스페인 산클라멘테문학상( ‘채식주의자’),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작별하지 않는다’)으로 이어져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 문화계와 독자들에게서 더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한 요인이다.    고통과 마주한 민감하고 연약한 개인이 고통을 통해 고통받는 존재들과 내밀하게 교감하는 일련의 소설들은 언어와 민족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게 했다. 여기에는 데보라 스미스를 비롯한 훌륭한 번역가들의 역할과 K-Culture 저변도 무시 못할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 여름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의 도시들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지 서점들에는 이미 ‘한강 작가 특별 코너’가 마련될 정도로 주목하고 있었고, ‘문학인 달력’에는 카프카와 헤밍웨이 등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수십 명의 세계 작가들 속에 그녀의 얼굴도 나란히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이후 그녀는 이미 영미권 2-30대 젊은 독자들과 평단을 중심으로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식물 사이에서 끊어진 영혼의 길을 잇는 감수성을 보여 주는 작가, 발표되는 작품마다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신형철)을 새롭게 선보이는 작가 한강의 노벨 문학상을 축하드리며, 이를 계기로 한국의 선후배 작가들이 깨어나고 문학의 저변이 확대되고 두터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