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마을은 한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우리 역사 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다.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양동리는 행정구역상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속하며 경주~포항간 철도 중 경주기점 16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3506가구에 전체 6023명(가구당 인구 1.71명, 2024년 10월 기준)이 거주하고 있는 강동면은 양동마을을 포함해 중요민속문화재, 국보, 보물 등 47개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등록돼 있다. 또 도지정문화재로 유형문화재와 기념물, 민속자료, 문화재 자료 등 14개가 지정돼 있고 비지정문화재도 12개가 있다. 전국 민속마을 6개소 중 원형보존이 가장 잘 돼 있어 국내 여행객뿐만 아니라 전세계 관광객이 줄지어 찾고 있는 양동마을은 현재 120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포항과 안강을 잇는 국도의 북측에 위치한 양동마을은 동북쪽은 포항시, 남쪽은 천북면, 서쪽은 안강읍과 접하고 있으며 동·남을 관통하고 있는 형산강과 남북으로 흐르는 기계천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형성돼 있어 이를 바탕으로 쌀, 딸기, 부추, 시금치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양동마을은 신라시대 아산장씨가 처음 부락을 구성해 약 5~6호가 거주하면서 부락명을 ‘양좌촌’이라 칭했다는 설이 있고, 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양동은 외손들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해 ‘외손의 마을’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고려말에는 월성이씨가 살았다고 하며 그 이전까지는 양촌이라 불리던 것이 그때부터 양좌촌으로 개칭됐다는 주장도 있다.양동마을은 지리적 위치로는 경주시에서 북으로 21km 지점, 포항시 경계에서 2km 떨어져 있으며 그 주변 마을인 인동리, 안계리와 접하고 있다.북쪽의 문봉을 주봉으로 하는 설창산은 마을의 뒷배경이 되며 그 줄기가 뻗어내려 물자형의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 능선이 흐르는 사이사이로 폭이 약 150m에서 400m 정도의 골짜기가 4곳에 있으며, 그 골짜기에 주거지가 형성돼 있다. 내곡, 물봉골, 거림, 하촌의 골짜기와 물봉동산과 수졸당 뒷 동산의 두 산등성이, 그리고 물봉골을 넘어 갈곡으로 마을이 구성돼 있다. 마을의 대부분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물봉골을 중심으로 볼 때 외곽지대이면서 저지대에 수목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마을 서쪽 변두리로 상수리나무가 군집돼 있으며 북쪽에는 참나무가 길게 군집하고 있다. 특히 저지대인 장터골은 삼나무와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대가 높은 곳에는 다시 소나무가 넓게 분포하고 있다. 양동마을은 이런 골짜기와 능선마다 160여호의 500여년 된 전통 고택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양동마을은 현재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돼 기와 및 초가 전통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지붕구조 일부가 개조돼 양기와 및 슬레이트 지붕에 조적조로 마감된 가옥도 일부 있다.국보로는 통감속편(제283호)이 있고 무첨당 여강이씨 종가(411호), 향단(412호), 관가정(442호), 손소영정(1216호)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백당 손동만 가옥 월성손씨 종택과 낙선당 손명호 가옥, 사호당 이원봉 가옥, 상춘헌 이원용 가옥, 근암고택 이동기 가옥, 두곡고택, 수졸당, 이향정 등은 중요민속자료로 등록돼 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월성손씨 4세 손사성의 차자인 양민공 손소(1433~1484)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처음 풍덕유씨 만호 유복하의 상속자로 이 마을에 입향해 현재의 월성손씨 종가를 신축했다. 손소는 슬하에 5남 1녀를 뒀는데 그중 차자인 중돈(1464~1529)은 호를 우재라 하고 이조판서와 좌우참판을 지냈다. 그는 조선 18현의 1인으로 문묘에 배향돼 있다. 당시 문묘에 배향되면 선정으로 인정받아 인신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부여받았다. 특히 우재선생의 여동생인 손씨부인은 여강이씨 이번에게 출가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장자가 회재 이언적(1491~1533)이다. 회재 선생은 당대의 명유이며 조선 5현의 1인으로 문묘에 향사되고 있다. 양동마을의 대표 민속놀이는 해마다 정월 보름을 전후해 치러지는 줄다리기다. 이때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편을 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돼 이것을 구경하기 위해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장관을 이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이 9~10세 아이의 키를 훌쩍 넘었을 정도로 굵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월 대보름이면 관람객들과 주민들이 함께 줄다리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머슴을 뽑아 농악대를 이끌고 동네를 돌며 지신밝기를 하는 등 양동마을은 당시의 마을환경과 교육과 정서, 신분계층의 질서, 가옥구조 등 조선시대 문화환경이 고스란히 집약된 곳이다.양동마을 체험 코스로는 하촌 방면 탐방 1길부터 대표 가옥 탐방 7길이 있으며 탐방로 중심 둘레길(6시간 소요)과 건물 중심 둘레길(5시간 소요)이 있다. 여기에 인원 제한 없이 무료로 신청 가능한 마을해설사가 시간제로 운영된다. 문화해설사로 10년 넘는 경력을 지닌 신경애씨(59·여)는 “기존에는 양동주민으로만 (마을해설사로)운영하다 경주시민 등 외부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돼 들어오게 됐다”며 “양동마을을 옛날부터 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해설을 하면서 이 마을이 더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양동마을 이지관 운영위원장은 “2010년 유네스크 등재 이후 8월부터 한해에만 45만명의 관람객들이 양동마을을 찾았고 이후에도 연간 3~40만명이 투어를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며 “대개 30분부터 길게는 2시간까지 6개 코스를 둘러보고 있으나 양동마을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며칠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2009년부터 고향을 위한 봉사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장을 맡게 된 이후 마을 운영위를 이끌며 녹색농촌체험마을 조성, 체험관 리모델링 확보, 부녀회 주최 음식 먹거리 기반을 다지는 등 여러 결실을 이뤄냈다.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이 위원장은 “조선시대에도 양좌동을 양동으로 줄여 부르기는 했었지만 애초 마을 이름은 양좌동이 맞다”며 “마을의 원래 이름인 양좌골, 양좌마을이라는 동명을 되찾고 주민 편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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