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 청리면은 시청소재지에서 남방 10Km 지점인 3번 국도변에 자리해 있으며 경북선 철도와 3번 국도가 면중심을 관통하며 동으로 낙동면, 남으로 공성면, 서로는 외남면, 북으로는 외남면 북동부와 신흥동에 접한 상주의 관문이다.동부에 조양산(485m), 남부에 수선산(684m), 기양산(680m), 서부에 서산(509m) 등의 험한 산이 면을 둘러싸고 북부에 남천이 북류하고 있어 남천을 따라 남북으로 좁다란 평야가 이뤄져 있다. 청리면은 신라시대 이후 서울로 가는 길이 형성될 정도로 사통팔달의 근원지이며 인근의 김천, 구미, 왜관과 상주시가지를 잇는 지리적 중심지로 농산물이 풍부하고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인심이 순후한 살기좋은 전원지역이다.신라시대 음리화현에서 경덕왕 때 청효현으로 고쳐 상주에 속했고 고려 태조 23년에 청리현으로 명칭이 변경된 이후 1914년 상주군 청동·청남의 2개면을 병합해 청리면으로 개편, 1995년 상주시군 통합으로 지금의 청리면이 됐다. 청리면은 농업이 주 소득원으로 비옥한 평야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쌀과 복숭아, 사과, 배 등의 고품질 과일이 생산되며 근래에는 딸기, 오이 등 특산물 재배가 늘어나고 있다. 청하리, 청상리, 학하리, 하초리 등 18개 법정리, 79개 반, 43개 자연부락이 있으며 1457세대로 2719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역 문화재로는 존애원(경북기념물 89호), 체화당(경북문화재자료 178호), 창석사당(경북문화재자료 178-2호), 청하리·원장리·월로리·청상리·마공리 등의 고분군, 이준묘, 이준재실 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의료시설인 '존애원'은 상산 선비들이 '존애심물'의 숭고한 사랑을 실천하려는 뜻에서 1599년 창설됐다. 1602년 완공된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1.5칸에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과 그 앞쪽에 길게 툇마루가 있다. 방 뒷벽에는 벽을 뚫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든 벽장이 있다. 지붕은 옆에서 볼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존애원의 명칭은 송나라의 성리학자 정자의 가르침인 '마음을 지키고 길러서 타인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존심애물'에서 비롯됐다. 존애원은 전쟁의 화를 입고 질병 앞에 무방비 상태였던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한 사설 의료국이다. 단순한 약재 제공을 넘어 의술을 베푸는 민간 의료시설로 역할했다. 치료는 유의의 도움을 받고 운영은 낙삭계원들이 출연한 미포를 기본으로 했으며 판매한 약재비 등으로 충당했다. 비단 건립에 참여한 사족에게 국한되지 않고 향촌민 모두에게 문을 활짝 열어줬다는 점에서 존애원의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13개 문중을 중심으로 창설됐으며 의료활동과 더불어 1607년 갑오경장에 이르기까지 경로잔치인 백수회도 개최했다. 존애원의 활동은 17세기 중엽에 이르러 약재 수급과 재원 확보 등의 이유로 운영이 어려워진다. 특히 1782년 존애원 주변에 사는 향민 간의 무고에 연루돼 약방이 철거되고 그간의 운영 기록이 모두 사라지는 수난을 겪으면서 의료활동이 중단됐다. 상주시에서는 2009년부터 매년 '존애원 정신 계승을 위한 재현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청리면 가천리에 소재한 체화당은 1986년 12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운 월간 이전(1558∼1648)이 노년에 도를 가르치던 곳이다. '체화'란 형제의 우애를 뜻하는 말로 이전과 이준의 우애를 상징하는 말이다.이전의 아우 이준은 159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가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 안령 전투와 고모담 전투에 참가했다. 이준이 백화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상처를 입자 이전이 동생 이준을 업고 전장을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했다는 내용이 '형제급난도'(兄弟急難圖)에 적혀 있다.체화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대칭으로 배열하고 방과 대청 앞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창과 문은 각각의 기능에 맞춰 고급 기술로 만들었다. 체화당 바로 뒤편 400여년이 넘는 전통가옥에서 살고 있는 홍숙자(84·여) 씨는 “스무 두 살부터 이곳으로 와 시집살이를 했다”며 “바깥양반이 체화당의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5칸이다. 지붕 뼈대는 체화당과 같지만 화려한 무늬인 단청이 있다. 체화당에 있는 보호수는 배롱나무로 수령 382년이다. 창석사당은 창석 이준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56년 창건됐다가 1771년 월간사당과 함께 체화당이 있는 곳으로 옮겨 세워졌다. 우광하 청리면장은 "우리 면은 농촌도시지만 동시에 산업단지 내 안전운전체험연구교육센터와 웅진폴리실리콘, 나노, TY METAL 등의 업체가 입주해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17개 마을 이장님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편의를 보살펴주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다"고 전했다.우 면장은 "면 직원이 근무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우리 직원들이 행복해지면 그 행복 바이러스가 우리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파된다"며 "그로 인해 직원들과 주민들이 함께 상생하다보면 그 어느 면보다 더 잘 사는 행복한 청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정길(69) 청리면이장협의회장은 "청하 3리는 인구 60명 남짓의 아담한 동네"라며 "주민들이 모두 고령이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6년차 이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경찰 공무원 출신의 이 회장은 "우 면장님과 각 마을 이장들 간 화합이 정말 잘 되고 있다"며 "존애원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모두가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행복한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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