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의 중심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며 다양한 산업이 공존하고 있어 인구의 37%가 아동·청소년층으로 '차세대 미래 도시' 구미 이미지에 어울리는 고장이다.고아읍은 과거 평성방, 망장방, 서내면으로 구성된 이후 1914년 고아면으로 통폐합 개칭됐고 1997년 11월 1일 고아읍으로 승격돼 지금에 이르렀다. 관심리, 이례리, 오로리, 대방리, 파산리, 신촌리, 봉한리, 항곡리, 예강리 등 18개 법정읍과 53개 리, 534개반 28개 자연부락이 있으며 인구현황은 2024년 10월 기준 1만5981세대로 3만9018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요기관으로는 공공기관 8개소, 금융기관 2개소(고아농협, 고아새마을금고), 교육기관 8개소(초등6, 중등1, 고등1), 복지시설 8개소, 종교시설 36개소가 있으며 고아읍문화센터 운영으로 읍민들에게 체력단련실, 동아리실, 열람실, 다목적실 등을 제공하고 있다.특히 고아농공단지를 포함해 18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현재 제2농공단지 조성사업이 추진 중에 있다. 지역 특산품으로는 금오산찰쌀보리, 금오산인삼, 참(아래아)돈,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메뚜기쌀 등이 있다. '고아'(高牙)라는 명칭은 '높은 곳에 깃발을 꽂은 아성'(牙城)이라는 뜻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에 현 고아읍사무소를 중심으로 남쪽 3km 지점 이내에 '고아부곡'(高牙部曲)이 있었다. 1914년 지방행정조직을 재정비할 때 이 이름을 따서 고아면이 됐다고 전해진다.또 고려가 후백제와의 최후 결전에서 승리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왕건 및 총지휘관이 주둔하고 있는 내성, 혹은 본 진영 성곽인 아성'이었던 매봉산 주변지역(현 송림·괴평 지역)을 '고소아리동리'(高所牙里洞里), 고려군 아성의 소재지를 줄여 '고아'라고 불렀다. 고야읍은 고려 말의 충신이자 다수의 영남 인재를 길러낸 야은 길재 선생의 출생지이며 삼강정려각, 대월재, 매학정, 김종무 충신정려비, 길재유허비 등의 문화유산이 있다. 길재 선생은 8세 때 외가 김희적의 집에서 자랐고 11세에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냉산에 있는 도리사에서 글을 쓰고 시를 짓는 법을 익혔다.1374년 국자감에 입학해 생원시험에 합격, 1383년 사마감시에 합격했으며 3년 뒤 진사가 됐다. 이후 문하주서의 벼슬까지 올랐으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개창된 후 태종이 '태상박사'라는 관직을 내렸으나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사양하고 선산에 은거해 절의를 지켰다. 1419년 67세로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훗날 봉한리 서쪽 산 밑 야은 선생의 태지에 유림과 후손들이 뜻을 모아 1985년 1월에 비를 세웠다. 남계초등학교가 소재한 봉한리는 고아읍행정복지센터 남쪽으로 4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예강 2리에서 괴평리로 흘러가는 낙동강이 있고 송림리와 접해 있다. 서쪽으로는 접성산을 넘으면 대망리와 경계한다. 남쪽으로는 접성산 지맥인 매봉산으로 이어있고 북쪽은 항곡리와 이어진 마을이다. 봉한리는 산수정기가 수려한 배산임수형의 마을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삼강정려'의 마을로 이름이 알려진 전통있는 마을이다.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3호인 삼강정려각은 봉한리 915-3번지에 있으며 조선 25대 정조 19년(1795년) 부사 이채가 집을 지어 삼강정려각이라 이름 지었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 즉, 유교의 실천윤리인 충·효·열을 말한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나라에서 표창하는 제도로 한 마을에서 삼강행실이 모두 발생하면 마을 입구에 홍살문을 세우고 정려비를 세우는 정표제도가 있었다. 봉한리에 있는 정려각에는 야은 길재의 충절, 열녀 약가의 정절, 효자 배숙기의 효행 등을 정려해 세운 비다. 이외에도 과거 봉한 2리 마을 뒷산 사방사업 공사장 지하 1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국보 183·184호) 2점과 금동여래입상(182호) 1점이 발견됐다. 현재까지의 금동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큰 편으로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장인수 읍장은 "고아읍 남부지역에 신축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구가 2000여명 정도가 늘었다"며 "북부지역의 택지개발 등이 이뤄지면 앞으로도 인구 유입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읍장은 "우리지역은 야음 길재 선생의 출생지로 충절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며 "이런 충절의 마음으로 주민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모두 합심해 고아읍 전체가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봉한 2리 윤호갑(68) 이장은 "180가구에 300명 남짓 되는 주민이 살고 있지만 고령화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며 "지난해부터 젊은 세대의 유입과 정착을 위한 주변 환경 개선과 정비를 추진하며 벽화사업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윤 이장은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면 젊은 세대 유입도 점차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충절의 상징인 야음 길재 선생을 필두로 모두가 화합해 살기 좋고 행복한 마을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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