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 도처에 무수한 길이 있다. 땅에 도로가 있고, 물이 흐르는 길, 배가 가는 길이 있으며, 비행기가 가는 길이 있다.    우주에도 길이 있어 행성(行星)은 항성(恒星) 주위의 길을 따라 돌고 돈다.오늘날에는 정보가 흘러가는 길이 생겨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 활짝 열리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몸속에는 피가 흐르는 길이 있어 끊임없이 흐르고 흐른다. 또한 사람이 가는 인생길이 있다.    우리네 인생길은 유지나가 부른 '고추' 노래 같다. '고개 고개 넘어가도 또 한 고개 남았네 넘어 가도 넘어 가도 끝이 없는 고갯길'이다. 길을 잘못 가거나 길이 막히면 큰 혼란이 생긴다.     계절마다 길은 색다르다. 봄바람 살랑살랑대는 봄길은 경쟁하듯 지천에 꽃이 핀 꽃길이다. 봄꽃들의 합창 소리와 싱그러운 꾀꼬리 노래가 봄길을 수놓는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길은 고행길이다.    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바다로 피서길을 떠난다. 삽상한 바람이 부는 가을길은 정겹고 울긋불긋한 단풍길이다.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겨울길. 때론 축복 같은 눈이 내려 순백의 눈길이 된다.   삭풍이 부는 겨울에 잎이 우수수 떨어져 인도와 길에 누운 무수한 낙엽들. 태양과 맞서며 온갖 시련에도 잘 버틴 청청했던 시절을 곰곰이 생각하며 반가유상이 된다.   그러다 찬 바람이 불면 가벼워진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진달래 핀 봄날의 길을 꿈꾸며 이리저리 길을 방황한다. 나뭇가지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잎 참 애처롭다. 우주에 사는 모든 존재 떠날 때가 되면 홀연히 길을 떠나야 한다.   비도불행(非道不行),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의 효경(孝經)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길이 없으면 내면서 가라'는 말도 있다. 어차피 그 어떤 길도 처음부터 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발자국을 내고 그 위를 다른 발자국이 걷고, 그렇게 길을 만들어간다.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그리스의 학자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묻자 유클리드가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대답했다는 서양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왕도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둘레길이 유행이다.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읊조렸다.    괴테는 '노력하는 한, 인간은 길을 잃고 방황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직물도 실이 가는 길(絲道)이 있다. 실이 가는 길에 따라 직물의 형태가 달라지듯 인생도 달라진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 평탄한 길도 있고 자갈길도 있다. 그 인생길을 운전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과속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인생길을 달려가 보자.    산길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인생길도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조심조심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천천히 가자.   가을이면 북에서 남으로 단풍이 먼 길 떠나고, 봄이면 남에서 북으로 꽃이 먼 길 찾아 온다. 자궁에서 흙으로 가는 머나먼 길을 인총은 조심조심 걸어간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도 너무나 멀고 멀다. 험한 길도 아니고 높은 산도 없는데.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토닥이면 가슴으로 가는 길 절로 열린다.   '달랑 남은 잎새 하나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고 있습니다. 열사의 땅을 지나 빨간 고추잠자리 무등 타고 이제 종착역에 왔습니다. 구불구불 험난한 길 아롱다롱 꽃을 피우며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바라보며 곰곰이 지나간 한해를 되돌아봅니다.    힘들었던 일 슬펐던 일 추억의 무덤에 묻으면 그곳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그대여 눈물은 보이지 마세요. 흰 눈이 겨울의 등을 덮어주고 언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니까요. 열심히 살아온 당신 가슴이 따듯한 사람들 시린 세상에 반짝이는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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