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매월 1회 정기모임을 갖거나 혹은 수시로 점심을 함께 먹자고 폰(phone) 연락이 오면 대단히 반갑다. 기로(耆老)의 나이가 되니 성급한 친구들은 더러는 구원(九原) 정토로 떠나가서 해마다 재행무상(諸行無常)을 느끼며 고독을 다해가고 있다. 그래서 만남은 더욱 반가움을 준다.
함께 진미를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정담을 나누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이미 수년 전에 떠났지만, 그 친구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재치 있는 소담(笑談)을 잘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모임에서, 그 친구는 갑자기 개명(改名)했다고 엄숙하게 말했다. 이 나이에 이름을 왜 바꾸며, 개명한 이름이 무엇이냐고 좌중(座中)이 모두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앞으로 바꾼 이름을 꼭 불러라고 당부하면서, 개명한 이름이 '형님'이란 것이다.
나를 부를 때는 꼭 '형님'이라고 불러라는 것이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로 태나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형님' 말을 듣는 것이 부러워서 하는 말은 아니었고, 웃기려고 한 말이었다.
또 한 친구는 이것저것 여러 반찬을 젖 가락질 하다가, "제일 좋은 맛이 무엇이지?"하고 물었다. 각기 맛 취향에 따라 여러 답이 나왔으나 질문에 적중하지 않았다. 제일 좋은 맛은 '꿀맛'이라는 것이다.
맛의 극치가 꿀맛이라는 말에 모두가 수긍을 하였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꿀맛 같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종 가운데 개미와 꿀벌은 아주 연약한 미물이다. 그러나 이 두 미물을 교육에 자주 잉용(仍用)하는 것은 수가 많다는 것과 협동하여 일하면서 기능적 역할을 잘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미는 몸집은 작으나 집단에서 규정한 '메뉴얼(manual)'을 지키며 열심히 일하는 동물이다. 여왕개미, 수개미, 일개미로 구분된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고, 일개미는 식량을 모으는 일, 사냥하는 일 등을 담당하고, 군대개미류들은 진딧물을 포식곤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개미굴은 대단히 복잡하지만, 그들은 방황하지 않고 살펴서 잘 찾아간다. 절선의봉은 개미집을 찾아가듯 살펴서 하라는 말이다.복잡한 구멍이 있는 구슬에 실을 꿰는 데 개미를 이용한 의사미련(蟻絲彌聯)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구슬 구멍에 꿀을 바르고 개미허리에 실을 매어 두면 개미가 살펴서 그 구멍을 통과하여 실을 꿰었다는 것이다.
맛이 좋은 꿀과 로열젤리를 주는 꿀벌(honeybee)도 인류가 사육한 오래된 곤충이다. 한 마리의 여왕벌을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하며 일벌이 꿀을 따다 나른다. 일벌의 다리에 묻어온 꽃가루가 극소량이지만 그 개체수가 많아서 그것으로 많은 양의 꿀을 만든 것을 보면 꿀벌은 교육적으로 유용한 동물이다. 로마 사람들은 꿀벌을 길러서 얻은 꿀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延長)시켜주는 밀주(蜜酒)를 만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들여주었던 '개미와 비둘기'의 이야기는 새삼 가슴 뭉클한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개미에게 나뭇잎을 떨구어 구해 주었던 비둘기가 뒷날 사냥꾼의 총에 맞게 되었는데, 그 찰나에 개미가 포수의 다리를 물어 비둘기를 구해 주었다는 보은의 스토리는 은혜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좋은 교육이었다고 생각된다.
개미와 꿀벌은 모두가 자연계의 미물이지만 교육에 자주 회자 되는 것은 그들도 인간과 같이 소사어티(society)를 형성하여, 규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그들 나름의 매뉴얼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이다. 또한 절선의봉과 같이 길을 살펴서 간다는 것이며, 무엇보다 협동하며 각기 역할을 잘 수행하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혼란한 시국도 세월이 가면 평정상태로 돌아가겠지만, 책임이 중한 위치에 있는 위정자들은 불안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개미집을 돌아가듯 살펴서 하고, '호리유차(毫釐有差)면 천양역처(天壤易處)'라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의 자리가 바뀐다'는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 일구에라도 주목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