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이 국회를 통과되었다고 해서 직무 정지까지 해야 하나. 헌재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직무는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당의 줄 탄핵에서 드러났듯이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직무가 정지되는 건 헌법상 허점이다.
민주당의 줄 탄핵은 공직사회를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 사공을 잃은 배는 풍랑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을 몇 번이고 겪어야 했다. 오늘의 대혼란은 거대 야당의 줄 탄핵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줄 탄핵의 폐해를 없애려면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되어도 직무는 유지돼야 행정 공백을 없앨 수 있다. 당장 개헌이 어렵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탄핵 심판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보완책이라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난 13일 헌재의 판결 4건이 모두 만장일치였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보수, 진보, 중도로 갈라진 재판관들의 성향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시시비비가 분명한 사안은 진영 논리가 아니라 법리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판결 결과를 윤 대통령 탄핵과 연결 짓는 건 무리일 듯싶으나 영향이 없다고 볼 수도 없어 정치권은 유불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 선고에서도 모든 국민이 승복할 수 있도록 법리에 충실한 판결이 내려질 때 모두가 승복할 것이다. 헌재의 재판관 8명 만장일치로 모조리 기각된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반부패2부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민주당이 지난해 12월5일 밀어붙였다.
늦게나마 헌재가 깨이고 국민이 깨이는 것 같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억지 혐의를 만들어 무더기 탄핵을 한 것이다. 애초부터 헌법재판관들이 볼 땐 여러 차례 변론할 것도 없이 법리상 결론이 뻔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헌재가 최 원장에 대한 변론을 고작 한 차례로 종결했다. 이 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변론도 두 차례로 끝냈을 때부터 이미 이런 결과는 예상 가능했다. 다툼의 여지도 없다. 탄핵은 공직자가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확인될 때에만 가능하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모두 29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13건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이는 국회 다수 의석의 횡포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의 단초를 제공한 사건일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비상계엄을 옹호할 순 없지만 한국 정치가 이 지경으로 망가진 것은 ‘묻지 마 탄핵’을 자행한 민주당도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의 탄핵에도 헌재의 결과가 있을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