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논쟁과 강한 이미지에 가려져, 김문수 장관의 참된 면모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그의 진짜 모습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끝까지 곁을 지키려 했던 ‘의리의 리더십’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김문수 장관이 말하는 ‘의리’는 단순한 충성심이나 혈연·지연·학연 중심의 구시대적 개념이 아니다. 그가 실천해온 의리는 사람에 대한 책임이자, 관계를 이어가는 지속성이며, 존엄을 지키는 연대의 표현이다. 이러한 의리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됐다.그 대표적인 장면은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첫날, 김문수 장관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를 집무실로 가장 먼저 초대한 순간이다. 그는 도지사 의자에 그녀를 앉히며,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어머니가 먼저 앉아보세요.” 김 장관은 주저하는 이 여사에게 조용히 권했다. 그 말에는 승리의 선언도, 권위의 과시도 없었다. 담겨 있던 것은 오직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의였다. 김 장관은 높아진 자리를 함께 걸어온 이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그 짧은 한마디는 그가 말해온 ‘사람 중심 정치’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이소선 여사는 생전 김문수 장관을 ‘내 아들’이라 불렀다. 김 장관은 거리에서 투쟁하던 그녀의 삶과 고통을 함께 짊어진, 또 다른 아들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길에도 그는 상주처럼 곁을 지켰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정치적 유대를 넘어, 삶과 신념의 깊은 연대였다.김문수 장관의 의리는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접한 스무 살 청년 시절부터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그는 학업을 내려놓고 직접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험난한 선택은 이념 때문이 아니었다.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동운동은 사람을 향한 의리였다. 재단 보조공으로 이어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며 그는 ‘그들 곁’이 아닌 ‘그들 속’에서 살았다.민주화와 노동운동이 격화되던 시절, 그는 구속과 혹독한 고문을 견뎌야 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입을 열었지만, 김 장관은 끝까지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나는 누구도 팔지 않았다.” 짧고 단호한 이 말은, 그가 동지를 배신하지 않고 스스로 고난을 감내하며 의리와 신념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웅변한다.정치적 반대편에 있던 유시민 전 장관조차, 김문수 장관의 의리에 대해서는 “진짜다”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김 장관은 신념과 인간적 의리를 모두 지켜낸, 보기 드문 인물로 기억된다.그의 철학은 정치와 행정의 현장에서도 일관되게 실현됐다. 국회의원 시절, 결식아동 급식 예산이 삭감될 위기에 놓이자 김 장관은 끝까지 반대하며 예산을 지켜냈다. “아이들을 굶길 수는 없다”는 말은, 그가 사람을 중심에 두는 정치를 어떻게 실천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들과 직접 눈을 맞추고 식사하며, 존엄의 회복을 실천했다. 또한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가는 복지 행정’을 적극 도입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 정책 역시,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둔 행정 철학의 실천이었다.김문수 장관의 리더십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정치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있는 것.” 그는 이 말을 ‘말이 아닌 삶’으로 입증했다.오늘날 정치권은 너무 쉽게 사람을 버리고, 지나치게 자주 관계를 끊는다. 필요할 때는 친구였다가, 다 쓰고 나면 적이 되는 냉혹한 풍토 속에서 김문수식 정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의리는 강자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책임이며, 정파를 초월한 인간 중심의 리더십이다.진보와 보수를 모두 경험한 그였지만, 사람에 대한 일관된 태도만큼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는 진영을 넘나들며 신뢰를 얻고, 인간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됐다.김문수 장관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는 사람을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의 삶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낸 진심이었다. 사람, 관계, 그리고 의리. 그것이 지금 우리 정치가 다시 꺼내 들어야 할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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