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거기서 베녜를 먹어보지 않았으면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니까요."거의 매일 아침, 일하는 식당에서 봤던 거리의 여인 브랜디의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에드워드 리(한국명 이균)는 '베녜'라는 음식을 그때 처음 들어봤지만, 나중에 베녜는 그의 인생 음식 중 하나가 됐다.넷플릭스 예능 '흑백 요리사'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리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에 가면 평소와는 달리, 줄을 서서라도 반드시 베녜를 먹고야 만다고 한다. 베녜는 도넛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달고, 더 따뜻하고, 더 맛있는" 뉴올리언스 지역에만 있는,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크레올의 음식에서 연원한 '미국판 호떡'이라 할 수 있다.베녜는 또한 그에게 스물한 살, 달콤하고 치열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살살 녹아드는 베녜의 달콤한 맛은 새벽에 퇴근하는 브랜디와 담소를 나누고,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 아르바이트하러 다니다 불량배에게 봉변당했던 젊은 시절로 그를 데려다준다."나는 (베녜로 유명한) '카페 뒤 몽드'에 갈 때마다 브랜디를 떠올린다. 한 번쯤은 그녀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최근 출간된 '버터밀크 그래피티'(위즈덤하우스)는 에드워드 리가 쓴 요리책이다. 2019년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받은 책답게 요리 레시피만 담긴 책은 아니다. 레시피는 짧게 수록됐다. 그 흔한 요리 사진도 없다. 불필요한 형용사 없이 단정한 단문으로 쓰인 요리법이 전부다.책의 진가는 요리보다는 이야기에 있다. 그는 미국 여러 지역을 돌며 만난 요리사들과 식당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수많은 직업을 거치며 고된 반평생을 산 뒤에야, 식당 주방에 칩거해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기억하며 전통적인 캄보디아 요리를 복원해 낸 캄보디아인 셰프 샘, "양고기뿐 아니라 오래된 도마와 망치로 두들겨 만든 양철 냄비, 열기, 가엽게 우는 동물, 긴장을 늦추지 않고 힘겹게 움직이는, 핏줄이 튀어나온 노쇠한 요리사의 손놀림이 모두 담긴" 양고기 국수를 대접한 위구르인 셰프 등 다양한 요리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저자는 무명 요리사들이 발전시켜온 진짜 이야기가 담긴 요리들을 채록하기 위해 미국 각지로 떠났다. 그리고 많은 이민자의 이야기, 그들의 음식이 수천 킬로미터를 건너와 미국의 모든 가정으로 흘러든 이야기를 채집해 책에 담았다."이야기 속에 개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풍미와 질감이 들어있고,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책에도 저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제목 '버터밀크 그래피티(그라피티)'부터 그렇다. 버터밀크는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식재료이자, 저자가 "심히 사랑하는" 재료다. 그라피티는 저자가 10대 시절 꿈 없이 방황했을 때 몰두했던 예술 장르다. 둘 다 따로 떼어놓으면 일차원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지만, 둘을 합치면 저자의 "정체성을 온전히 함축하는 상징이 된다"고 한다. 박아람 옮김. 416쪽.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