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이응휘 삼국지를 읽다보면 책사가 여럿 등장하는데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얻은 제갈량이나 사마의(司馬懿), 고려 태조 왕건의 책사 태평,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운 정도전, 세조의 왕위찬탈을 풍자해 지은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 주초위왕(走肖爲王)의 음해로 사약을 받은 조광조 등이 역사에 나오는 대표적인 책사다. 반대로 우리 역사에서 간신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로는 효종 당시 북벌의 계획을 청에 누설하다가 발각되어 유배를 간 김자점, 영창대군을 역적으로 몰아 불에 태워 죽이는데 앞장 선 이이첨, 무오사화의 주역 유자광 등이 대표적이다. 책사라 하면 정책을 조언하고 전략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해석하고 간신이라 하면 간사한 신하를 일컫는 말로 사전적 의미가 있다. 오늘날도 간신이라는 말은 과거와 같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책사란 보좌관 내지는 특별 보좌관, 핵심 참모로 보면 가장 가까운 의미가 될 듯하다. 드라마에서 사극을 보면 이따금 책사의 역할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임금의 가장 지근거리에서 사안별로 판단하고 임금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도록 조언한다. 자칫 잘못하면 임금의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충신(忠臣) 중의 충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책사는 당대에 큰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하고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책사의 주변에는 항상 간신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책사의 조언이 못마땅해 음해하거나 모략을 짜서 책사를 내치려는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심판을 통해 책사는 책사로서 평가받고 간신은 간신으로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존재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무오사화나 기묘사화 같은 경우도 책사를 몰아내기 위한 간신들의 모함이 발단이 되어 책사들을 몰살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간신의 달콤한 순간적인 말과 계략에 넘어간 임금은 결국 책사 버리고 간신을 중용하는 우(愚)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면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물론 왕권시대와는 시대적이나 권력적 구조 환경이 차이는 있다고는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임금이나 지도자 옆에서 과연 책사의 역할을 하는 보좌관이나 참모가 있는 것인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는 지도자는 불행한 것이고 책사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는 행복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책사 옆에는 항상 간신이 같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책사의 진언(進言)은 명쾌하지만 듣기는 거북할지언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간신의 말은 당장 듣기에 달콤한 것 같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계략이 있기 때문에 즉각 내쳐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책사는 지도자의 눈과 귀를 열게 하고 간신은 지도자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 버려 결국 허수아비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큰소리로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시대를 중심이 되는 분들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지도자가 되고 나면 눈과 귀가 막히고 남의 말을 들으려도 하지 않고 자신 밖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종 종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조언자의 올바른 이야기는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귀에 거슬리다 보니 묵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잦다가 보면 책사는 입을 다물게 되고 지도자의 입맛에 맞는 달콤한 이야기만을 듣게 돼 버리는 결과가 오게 되는 것이다. 결국은 그 지도자는 달콤한 간신의 말에 지도자로서 역할을 망각하게 되고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우리 시대 진정한 책사는 없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있어도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시점에 와 있다. 책사는 정치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모든 분야에서 책사는 필요로 하는 것이다. 간신이 우대 받는 세상이 온다면 그 사회는 잘못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한 일이고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정확한 조언을 해주는 책사가 인정받는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지도자들이여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눈과 귀를 열고 진정한 책사를 찾아 나서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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