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왕따와 집단폭행으로 온 나라가 들긇고 있다. 집단폭행에 시달려온 한 중학생의 자살로 촉발된 이번 문제는 그동안 수면아래 잠자고 있던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우후죽순처럼 드러나면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파장은 엄청났다. 상상을 뛰어 넘는 피해사례와 가해자들의 영악하고 잔인한 수법이 국민을 경악케 했다. 교사들마저 일부 빗나간 학생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장에 대한 실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집단폭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꽃봉오리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 잠담한 세상을 두고 모두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학교폭력 근절에 나섰다. 범죄신고 112, 화재재난 발생 119처럼 학교폭력 신고전화를 117로 통일하고 원스톱으로 신고와 상담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학교부근을 순찰하는 경찰을 늘이고 학부모와 교사들,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감시시스템도 가동하겠다는 내용이 종합대책에 포함됐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랜 전에도 일진회는 있었고 폭력이 문제가 될 때마다 대책이 나왔지만 일진회와 같은 불량서클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학교폭력과 집단왕따는 성인범죄보다 영악하고 잔인하게 발달해 이제는 교사들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사가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위협을 받아 신변에 불안을 느끼는 사례가 허다하다. 선도의 대상이 아니라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선 폭력학생들을 선량한 학생들과 격리시키고 폭력이 재발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117신고전화가 시행되면 많은 피해자들이 이 제도를 통해 피해에서 벗어나길 기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학생들이 조사대상이 될 것이고 학교는 교육현장이 아니라 117의 조사대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선도가 병행돼야 한다. 처벌과 선도가 병행될 때, 애정어린 지도로 접근할 때 문제해결의 빛이 보일 것이다. 집단폭행은 어느 시절, 어느 사회에서도 상존해왔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약육강식의 원칙이 사람사는 세상에서도 적용되는 가장 원초적 본능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이지메’라 하여 학교의 해묵은 골칫거리로 남아있고 미국의 학교에서도 이 문제해결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초적 본능은 교육의 힘으로 자제시키고 공생하며 이바지하는 능력을 배양시켜 나가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주고 집단의 힘을 이용한 약자에 대한 괴롭힘이 비굴하고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가정에서부터 “남을 때릴 지언정 맞고 오지 말라. 힘이 모자라면 몽둥이라도 들어 대항하라”고 가르치는 현실에 스스로 자성해야 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과 동행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폭행과 비행으로 시간을 허비할 때 세계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 10년, 20년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며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비굴한 일이며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인지를 교육을 통해 알게해야 한다. 그것은 폭력학생들에 대한 처벌강화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다. 처벌강화는 대증적요법이지 예방과 선도의 처방은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단체로 어울리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고 학교와 가정, 교사가 상호 유기적 관계로 학생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보다 교육여건이 훨씬 취약해 한 학급에 60~70명씩 수용할 때도 교사들은 교외생활지도와 가정방문등으로 애정어린 학생지도를 해왔다. 지금처럼 가정방문도 금지하는 규제일변도의 교육제도가 우리의 청소년들을 선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학교폭력문제는 교육의 힘을 이용한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 처벌강화는 여전히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처벌학생을 가려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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