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가리켜 미적(美的)이라고도 하고 예술이라고도 한다. 예술이란 학예와 기술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독특한 표현양식에 의해서 미를 창작・표현하는 활동을 말하는 넓은 분야다. 아름다움이 학술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의 많은 분야에서까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많은 관심 중에 하나가 아름다움을 위한 행동이나 흔적을 추구하면서 산다. 그래서 많은 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과 활동을 많이 하면서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애쓴다. 그런 갸륵한 마음의 뿌리가 존재하기에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서 늘 그리움을 두고 사는 것이 인간의 공통된 염원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에는 거짓이 없고, 악이 없으며, 질투와 시기도 없는 낙원이다. 실생활 가운데 하나로 간혹 유원지나 식당, 그리고 공중화장실에 가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고 간 자리도 아름답다’라는 표어가 적혀있다. 한번 뒤돌아보고 가는 습성이 생긴다. 인간의 형성과 평가에는 원칙이 있는데 첫째가 진실된 말을 하느냐(眞), 그리고 마음씨가 바르고 착하냐(善), 셋째가 용모와 몸가짐이 단정하고 얼마나 아름다우냐(美)로 지적이 된다. 앞의 세가지를 함께 겸비한 사람을 가리켜 ‘아름다운’사람이라 한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늘 추구하며 그렇게 되기를 노력하고 소망한다.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서 말이나 몸가짐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또한 마음의 아름다움도 매우 중요시 한다. 서양 격언에 “마음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육체의 아름다움은 동물들의 장식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하여 사람은 날마다 교양을 쌓고 자기를 관리하고 겉모양에 신경을 쓴다. 중요한 것은 겉도 중요하지만 속이 발라야 한다. 아름답지 못한 일들이 인간의 내부에서 작용한다. 속이고 흉보고 험담하고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것도 모두가 아름답지 못한 인간의 추태이다.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고통을 주며 남을 모독하는 것들이 가까운 사이에서 많이 일어난다. 낯선 사람과 싸우는 것보다 친한 사람끼리의 투쟁이 더 많다. 사회학자 실러가 말하기를 “진리는 현명한 자에게 있고 아름다움은 참된 마음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외적인 미에도 관심이 있지만 내적인 미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진정 아름다움을 지닌 자라고 했다. 아름다움이 지식이라고 한다. ‘적과 흑’의 작자 스탕달은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한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그 사람의 성질과 완전히 일치되었을 때 그리고 당사자가 자기의 아름다움을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 그 진가가 나타나는 법이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위하여 수양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협조한다. 미덕이 아름다움의 마음인 것처럼 아름다움은 육체의 미덕이다. 손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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