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우리와 주소 체계가 다르다. 도로를 중심으로 모든 건물이 고유한 번호를 가지고 있고 가지런하게 정리된 주소를 통해 어느 운전기사라도 쉽게 집을 찾아낸다. 아무리 복잡한 시가지의 뒷골목이라도 어김없이 찾아간다. 신기할 정도다. 우리처럼 대충 어림짐작으로 주위를 찾아간 뒤 일일이 물어서 집을 찾는 것과 학연히 다르다.우리도 이러한 주소체계가 이뤄진다. 내년 1월 1일부터 그동안 사용돼 온 지번 주소 대신 도로명 주소가 사용된다. 이제 공공기관에 전입, 출생, 혼인신고 등 각종 신고를 하거나 서류를 제출할 때 반드시 도로명 주소를 적어야 한다. 다만 부동산 표시에는 지번주소가 계속 사용된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 전면 사용에 앞서 나타난 문제는 아직도 자신의 도로명 주소를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도로명 주소는 시·군·구·읍·면까지는 기존의 주소와 같지만 동·리·지번 대신 도로명과 건물 번호를 쓴다. 도로를 크기에 따라 대로, 길로 나눈다. 폭이 40m를 넘거나 왕복 8차로 이상이면 ‘대로’라고 쓰고 그보다는 작지만 폭이 12m이상이거나 왕복 2차로 이상이면 ‘로’라고 표기하는 식이다.도로명 주소로 바뀌는 이유는 지번 주소가 1910년 일제가 토지조사를 목적으로 토지에 번지를 붙인 일제의 잔재라는 점과 급격한 토지개발과 도시화를 기존의 주소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모두가 도로명 주소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정부는 도로명 주소 도입으로 길 찾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관계자들은 하나의 지번에 여러 개의 건물이 존재하는 등의 문제점 때문에 현 주소체계는 길 찾기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 재난사항시 응급출동 속도가 빨라지고 물류비 등이 대폭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하지만 아직도 자기집 도로명 주소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고 관심도 낮다. 특히 노령층이 많은 농촌지역은 더욱 심하다. 화재 등 위급한 상황에서 신고도 용이하지 않고 기존의 연락처를 새롭게 확인하는 일도 쉽지 않다. 각종 공과금이나 금융거래 내역 인식 및 재산권 관련 공적 서류의 배달에 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면·리 지명 하나하나에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지는 각 지역의 설화와 역사가 스며들어 있으며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 이러한 역사 문화적 자원이 사라질 수도 있다.뿐만 아니라 아직 본격 시행되지 않았지만 도로명 주소의 오류가 더러 발견된다고 한다. 정착된 선진국의 주소와 달리 가지런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불편사항은 아직 이 시스템에 대해 적응하지 못해 어색한 국민들의 정서가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도로명 주소가 정착되기까지는 적이 않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도 지난 1962년 이후 도로명 주소 사업을 본격 시행했지만 50여년 넘게 아직도 바꿔가고 있는 중이라 한다. 주민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 집주소를 기억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새롭게 시행되는 주소체게에 대한 적응이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해야 한다.정부와 지자체는 유관 민간단체와 유기적인 협조로 도로명 주소제도가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집, 내 직장의 도로명 주소부터 외우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김정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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