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우호도시 협약을 맺은 이란의 고도 이스파한에는 ‘차하르 바그’라는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이스파한의 중심거리로 시민들의 쇼핑과 휴식을 제공한다. 길가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가 심어져 있고 갖가지 꽃들이 사이사이 놓여 있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벤치가 있어 산책하던 시민들이 쉬어가기도 한다. 이 거리 ‘차하르 바그’는 바로 세계 최초의 가로수 길이다.사파비 왕조가 수도를 이스파한으로 이전하면서 1598년에 완공한 길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400년이 넘은 오래된 길이다. 한 나라의 수도를 관통하던 이 길은 아직까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거리를 만들 당시 중세 유럽의 지저분한 거리와 대조되는 아름답고도 향기로운 거리였다.이 거리는 8개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하쉬트 베헤쉬트’에서부터 이스파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씨오세 다리’까지 약 10km 정도 이어진다. 황막한 사막과 민둥산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란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궁전을 만들고 그림 같은 다리를 만들어 그 사잇길에 가로수를 심었다는 사실은 이란 민족의 예술적 감성을 짐작하게 만든다.이스파한의 역사는 400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리는 ‘낙쉐자한’ 광장을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의 최고 걸작을 만들어 놓았다. 이란이 핵개발로 인해 경제적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스파한의 섬세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덜 알려져서 그렇지 앞으로는 세계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성장할 것이 틀림없다.경주는 1천년 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산재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한 줄에 꿸만한 핵심 콘텐츠가 부족해 여러 모로 고전을 하고 있다. 왕경의 모습을 보여줄 만한 유적들은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고 이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반월성에서 계림을 거쳐 첨성대와 대릉원을 잇던 옛길은 사라져 버렸고 반월성을 끼고 흐르던 해자처럼 흐르던 천주도랑은 그 이름조차 잊혀졌다. 옛것은 촌스럽고 낡은 것이어서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시절 저질러진 역사인멸의 결과다.최근 경주가 열을 올리는 일은 왕경유적 복원이다. 왕궁과 황룡사를 복원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신라문화의 옛 모습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옛것의 모습을 다시 찾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시도다. 의미가 없거나 문헌에도 정확하지 않은 것을 도시 이미지 확보 차원에서 복원하는 일이 흔한 시대에 월성과 황룡사의 복원은 충분한 명분과 값어치가 있는 일이다.그러나 왕경유적을 복원하는 일에 더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주변 인프라 구축이다. 예컨대 중국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이나 화청지를 발굴해 개방하면서 그 일대 촌락을 완전히 밀어버리고 말쑥한 주차장과 쇼핑센터로 구축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개방 초기 병마용과 화청지에 진입하다가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중국 전통 가옥과 현지인들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중요한 문화관광 콘텐츠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경주의 왕경유적 주변은 지금 벌판이다. 복원 이후에 무엇으로 치장할지 궁금하다. 거기에 중국의 무지막지한 개발 논리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과거 신라시대의 촌락을 마치 민속촌처럼 재현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비워놓고 기다릴 줄 아는 미학을 배워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다시 이스파한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스파한의 ‘차하르 바그’ 주변에는 수백년 된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그 사이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낙쉐자한’의 고풍스러운 이슬람 건축물과 잇댄 바자르(전통시장)는 그 자체가 문화재다. 시민들은 아직도 그 바자르에서 물건을 사고 생업을 잇는다.사라진 것들의 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니고 있는 것의 보존인지도 모른다. 경주의 구도심은 그나마 경쟁력을 가진 자원이다. 이들이 자연스럽게 세월의 때를 입고 복원되는 왕경유적과 조화를 이룰 때 경주는 비로소 왕경도시의 모습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이상문(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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